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자신의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
헌법재판소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정치적 목적으로 국가긴급권이 남용된 한국 현대사를 언급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 “이제는 더 이상 국가긴급권이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피청구인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국정을 성실하게 수행하리라는 믿음이 상실되어 더 이상 그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날 공개한 ‘2024헌나8 대통령 윤석열 탄핵’ 사건 결정문에서 법 위반의 중대성을 판단하면서 윤 전 대통령이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우리나라 국민은 오랜 기간 국가긴급권의 남용에 희생당해 온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서 1952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정치파동’을 일으켜 계엄을 선포한 뒤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킨 일을 먼저 언급했다.
헌재는 박정희 정권과 관련해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12월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며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1971년 12월27일 제정된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대통령이 그의 재량에 따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정지시키고 국회에서 심의·확정한 예산안을 변경할 수 있는 등의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은 1972년 10월17일 대통령특별선언을 통해 기존의 헌정질서를 중단시키고 이른바 유신체제로 이행하고자 그에 대한 저항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며 “1979년 10월18일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인 부마민주항쟁을 탄압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적시했다.
헌재는 이에 대한 반성으로 1987년 9차 개헌에서 비상조치 권한을 폐지했고, 1993년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이 발령된 외에는 이번 계엄 선포 전까지 국가긴급권이 행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이는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국민의 헌법수호에 대한 의지가 확고해지면서 나타난 당연한 결과였다”고 밝혔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마지막 계엄이 선포된 때로부터 약 45년이 지난 2024년 12월3일 또 다시 정치적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을 남용했다”면서 “계엄 선포 및 그에 수반하는 조치들은 사회적·경제적·정치적·외교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이제는 더 이상 국가긴급권이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헌재는 “피청구인에 의한 국가긴급권의 남용은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헌법질서를 침해”했다며 “대외신인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정치적 불확실성의 확대로 인한 외교적, 경제적 불이익 등을 고려할 때 국익을 중대하게 해하였음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결국 우리의 헌정사적 맥락에서 이 사건 계엄 선포 및 그에 수반하는 조치들이 국민에게 준 충격과 국가긴급권의 남용이 국내외적으로 미치는 파장을 고려할 때, 피청구인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국정을 성실하게 수행하리라는 믿음이 상실돼 더 이상 그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병력을 국회에 투입한 것은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에 반해 국군통수권을 행사해 헌법을 위반한 행위라고 밝혔다. 헌재는 “군인들이 맞닥뜨린 것은 적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었다”며 “일반 시민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무력을 행사할 수 없었던 군인들은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이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헌법제정권자인 국민은 우리의 헌정사에서 다시는 군의 정치개입을 반복하지 않고자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에 명시했다”면서 “(그러나) 국군통수권자인 피청구인이 정치적 목적으로 그 권한을 남용함으로써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여 나라를 위해 봉사해 온 군인들이 또 다시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주3일 10분 뉴스 완전 정복! 내 메일함에 점선면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