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03월28일 09시20분에 팜이데일리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한때 나스닥 시가총액 60억 달러(약 9조원)를 기록했던 미국 유전체분석 회사 23앤드미(23andme)가 상장 4년만에 파산했다. 유전체분석 시장에 대한 담론에서 늘 주요회사로 언급되던 곳의 파산에 국내 시장도 동요하고 있다.
다만 미국과 국내는 유전체분석 산업의 규제환경과 서비스 내용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국내에서는 미국의 ‘조상찾기’ 서비스처럼 단발성 매출이 아닌 정기적인 질병 검사를 제공하는 점, 규제 덕에 역설적으로 보호받는 점 등이 지적된다. 국내 유전체분석 산업의 한계와 기회를 이데일리가 들여다봤다.
23앤드미는 앤세스트리DNA, 마이헤리티지 등과 함께 미국 유전체 데이터 기업 선봉장이었지만 영업적자를 벗어난 적이 없다. 여기에 지난 2023년 10월 발생한 사이버해킹 사건으로 약 700만명 고객의 개인 정보가 유출됐고 피해고객들에게 총 3750만 달러(약 550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던 회사가 일시에 큰 비용을 지출하게 된 것이 이번 파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회사의 작년 매출은 직전연도 대비 34.6% 늘어난 6000만 달러, 영업적자는 전년도 2억6293만달러에서 개선된 3587만 달러, 순손실은 2억7787만 달러에서 개선된 5300만 달러였다. 현금성 자산은 1163억원이었다. 적자 개선은 인원 감축 등 구조조정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23앤드미는 작년 말 전체 직원의 40%가량인 약 200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하는 등 위태로운 조짐은 산적했다. 결국 23일(현지시간) 미국 회생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 미국 연방파산법 ‘챕터11’ 제도의 ‘퍼스트 데이 오더’(first day order) 개시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회생절차를 진행하는 기업이 정상영업을 계속하게끔 하는 제도이며, 23앤드미는 이를 통해 기업가치 훼손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자산 매각대상자를 적극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회생법원이 23앤드미의 파산보호 신청을 인가하면 이어지는 45일 동안 법원 감찰하에 원매자를 받게 된다.
(사진=23앤드미 웹사이트 캡쳐) |
업계에서는 23앤드미 파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수익성 문제를 지적한다. 23앤드미의 주력상품은 DNA로 조상을 찾는 것이었는데, 이는 인생에 한번만 검사받으면 되는 내용이라 단발성 매출로 그친다는 문제가 있었다. 해당 분야에서는 앤세스트리DNA가 더 큰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앤세스트리DNA를 필두로 23앤드미, 마이헤리티지 3개 회사가 진행한 조상 찾기 검사는 3500만명 정도로, 이는 미국 인구의 10분의 1을 이미 검사했다는 말이 된다. 성장이 제한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조상찾기 검사에서 나아가 질병, 운동, 피부미용 등 종합적인 유전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은 비록 당장의 매출은 23앤드미 보다 작더라도 운영을 이어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3앤드미는 신규 서비스 발굴이 필요했지만, 시장조사·신제품개발 인력은 내보내고 데이터분석 인력만 유지한 것이 패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금, 주가, 대외신용도, 핵심인력이 모두 줄어든 상황이었다. 더불어 핵심파트너였던 분석장비업체 일루미나가 앤세스트리DNA 등과도 손을 잡게 되면서 23앤드미 싱황은 더욱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황주리 한국바이오협회 교류협력본부장은 “미국 23앤드미의 파산이 국내에 전혀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미국과 국내 유전체분석 시장은 성격이 상이하다. 미국 기업들의 유전자검사 1차 목적은 ‘조상 찾기’였고 2차 목적이 DTC(direct-to-consumer) 암 검사 등 질병 사전점검이었다. 반면 국내에선 조상의 원천이 한 뿌리이고, DTC 질병검사가 규제로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 대상으로는 유의미한 수준의 검사가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 국내 업체는 DTC 사업을 일찌감치 중단하고 병원연계 유전체분석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미국과 생태계가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 숙제는 ‘장비 국산화·해외 활로 개척’
국내에는 약 30여개의 유전체 관련 단체가 한국바이오협회 산하 유전체기업협의회(Korea Genome Industry Council)에 소속된 것으로 확인된다. 최대출 엔젠바이오 대표가 협의회 회장, 신동직 메디젠휴먼케어 대표가 부회장이며 마크로젠, 테라젠바이오 등 7개사가 운영위원사를 맡고 있다.
국내 유전체분석 기업들은 환자와 직접 거래하지 않고 반드시 병원을 거치는 점이 미국 기업들과 다른 점이다. 데이터 보안 안전성 등은 미국 대비 강화되어 있는 셈이다.
수익성 개선은 고민이 필요하다. 차세대염기서열(NGS) 형태의 유전체분석은 일회성 매출에 그치는 문제가 있다. 나아가 국산 분석장비가 없기 때문에 환율에 따른 원가 변동 이슈가 크다. 국내 유전체분석 기업들이 적지 않은 매출을 내고 있음에도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배경이다.
일례로 국내 대장기업인 마크로젠(038290)은 최근 3년 연속 1300억원대의 연매출을 기록했지만, 지난 2023년 4억원 영업적자를 내며 적자전환했다. 작년에는 영업적자가 65억원으로 심화됐다. 회사는 영업이익 감소의 원인으로 매출원가의 증가를 지적했다.
대부분의 국내 기업은 미국 일루미나의 분석장비를 사용해 유전체를 분석한다. 일루미나 장비는 가장 저렴한 것이 3억8000만원이고 기본 10억원을 호가한다. 장비마다 맞춤형 시약과 칩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루미나와 꾸준히 거래할수 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4~5년 주기로 기존 장비가 단종되기 때문에 부속품을 구할 수 없게된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신종 장비로 교체해 추가적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신동직 유전체기업협의회 부회장은 “달러가 강세이면 유전체분석기업의 원가가 올라가게 된다. 반면 소비자가는 계속 낮춰야하는 추세라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분석 장비의 국산화, 그리고 한류가 통하는 해외시장으로의 활로 개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부회장은 “국내에서는 검사항목, 검사에서 사용될 수 있는 유전자 등 모든 것을 국가에서 규제한다. 검체를 받을 때에도 병원을 통하고,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는 모두 코딩으로 가려진다. 개인정보 유출 염려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조상찾기같은 일회성 서비스와 달리 질병 가능성 등에 대한 검사는 반복적으로 받는 것에 의미가 있다. 유전체의 염기서열은 변하지 않지만, 후성유전체, 텔로미어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으면 질병 가능성을 꾸준히 모니터링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