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11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최종의견을 진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2.25/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
(서울=뉴스1) 정재민 이밝음 기자 = 지난해 12월 3일 밤 10시 28분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 후로 122일이 흐른 4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는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한다.
지난 '122일'은 전례를 찾기 힘든 초유의 나날이었다. 87년 체제 이후 처음이자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국회의 결의를 통해 6시간 만에 계엄령이 해제됐으며, 계엄 발령 11일 만에 현직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되고, 수사기관에 체포·구속됐으며,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다시 석방되는 등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사회는 분열과 혼란으로 요동쳤고 한국 경제는 격랑에 휘말려 허우적댔다.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당시 긴급 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비상계엄 선포였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비상계엄을 주도하고 준비했던 극소수만이 계엄령 발동 사실을 공유하고 있었다.
계엄 선포 약 30분 뒤에 발표된 포고령에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를 포함한 6개 항목이 적시돼 있었다.
'계엄'이란 단어를 역사책에서나 접했던 젊은 세대부터 까마득한 어린 시절 계엄을 직접 경험했던 중장년까지 충격에 휩싸였다. '계엄의 밤' 당시 총 4700여명의 군경이 국회로 진입하는 영상이 실시간으로 촬영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했다.
계엄령 선포 이후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재명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경찰의 봉쇄를 뚫고 국회 담을 넘어 본회의장에 집결했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가까운 18명의 여당 의원도 동참했다. 그렇게 190명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는 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4일 오전 1시 3분께 통과시켰다. 윤 대통령은 그로부터 3시간 20여분 뒤인 오전 4시 30분에 국무회의를 거쳐 계엄을 해제했다.
곧바로 야권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추진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은 비상계엄 나흘 뒤인 지난해 12월 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시도했지만, 정족수 미달로 폐기됐다. 탄핵소추안 가결에 필요한 찬성 인원은 재적 의원의 200명(3분의 2)이지만 투표 참여 인원이 이보다 5명 적은 195명에 불과해 '투표 불성립'으로 부결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선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 등 소수만 투표에 참여했다.
살얼음판 같은 정국이 이어지던 지난해 12월 14일 이번에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친(親)한동훈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국민의힘 의원 일부가 동참한 결과였다. 현직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였다. 당시 재적 의원 300명 전원이 본회의에 참석했으며 투표 결과는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였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15일 오전 경기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도착해 조사실로 향하고 있는 모습.(공동취재) 2025.1.15/뉴스1 |
체포된 최초의 현직 대통령…헌재 탄핵심판에도 직접 출석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것과 별개로 윤 대통령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국방부가 참여하는 공조수사본부(공조본)의 수사 대상이 됐다. 그는 내란 우두머리와 직권남용 혐의를 받았다. 현직 대통령은 형사상 불소추 특권이 있지만 내란죄는 그 특권 대상에서 제외된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3차례의 소환요구에도 불응하자 신병 확보에 나섰다. 공수처는 지난해 30일 서울서부지법에 내란 우두머리 혐의 등으로 체포영장 청구했다. 서부지법은 이튿날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은 헌정사상 최초였다.
이에 공수처와 경찰은 올해 초부터 서울 한남동 관저에 인력을 투입해 윤 대통령을 대상으로 체포 영장 1차 집행에 나섰다. 새해가 밝은지 불과 사흘째 되는 날(지난 1월 3일)이었다. 그러나 경호처와의 약 6시간 대치한 끝에 영장 집행은 무산됐다.
12일 뒤인 1월 15일 경찰과 공수처는 다시 체포영장 2차 집행에 돌입했다. 1차 집행에 투입된 경찰력의 8배가 넘는 1000명 이상이 대통령 관저로 향했다. 조직폭력배 같은 강력범죄자를 잡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경찰관 등 베테랑 형사들도 투입됐다. 윤 대통령은 앞서 경호처 간부 회의에서 '2차 체포 영장이 집행되면 무력 대응을 검토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긴장감이 고조됐지만 1차 집행 때와 달리 경호처 직원들의 극렬한 저항이 없었다. 경찰관들과 공수처 검사는 사실상 무혈입성하듯 진입해 당일 오전 10시30분쯤 윤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 공수처로 압송했다.
이후 윤 대통령은 공수처에서 조사를 받았다. 윤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처음이자 마지막 조사는 10시간 40분 만인 오후 9시40분쯤 종료됐다.
윤 대통령은 체포되던 날 밤 TV가 비치된 '3평 독방'에 배정돼 취침했다. 공수처는 1월17일 서울서부지법에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튿날 윤 대통령이 출석한 가운데 4시간 50분간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1월 19일 법원의 영장 발부로 구속됐다.
서부지법이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서부지법에 난입하는 등 폭동을 일으켰다. 사법부가 공격을 받은 것은 헌정사 초유의 사태였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던 윤 대통령은 이후 공수처의 조사를 일체 거부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1월 21일 헌재의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직 대통령이 본인의 탄핵심판 재판에 출석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총 11차 변론기일을 열고 증인 16명을 신문했다. 윤 대통령은 이 중 3~8차, 10~11차 등 총 8차례 변론에 출석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증인 12명을 대면했다. 윤 대통령은 헌재에서 총 155분 발언하며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의원과 법관 체포 지시 의혹을 반박했다.
지난 2월 4일 5차 변론기일 공판에서는 주요인사 '체포 명단' 메모를 근거로 자신에게 가장 불리한 진술을 하고 있던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증인 신문이 이어지자 금세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이날 "실제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지시했느니, 받았느니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를 쫓아가는 것 같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법원의 구속취소 청구 인용으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3월8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빠져나와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모습. 윤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지난 1월 26일 구속기소 된 지 41일 만, 1월 15일 체포된 후 52일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2025.3.8/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
다시 구치소 밖으로 나온 尹 '침묵' 일관
윤 대통령의 조사 거부로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공수처는 지난 1월23일 윤 대통령의 기소를 요구하며 사건을 검찰로 송부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윤 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2차례 구속기간 연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모두 불허했다.
결국 검찰은 1월 26일 단 한 차례의 직접적인 수사도 하지 못한 채 윤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만 구속 기소했다. 윤 대통령이 현직 최초로 '피고인 신분'이 된 순간이었다.
그러다 또 한 번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서울구치소와 헌재를 오가던 윤 대통령은 지난달 8일 구치소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이 전날(3월 7일)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하고, 검찰이 이에 즉시 항고하지 않으면서 석방됐던 것이다.
영장실질심사 기간을 제외한 10일 간의 구속 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했을 경우 윤 대통령은 구속기간을 넘겨 9시간 45분 동안 불법 구금됐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통상 수사기관은 시간이 아닌 날로 구속기간을 계산해 왔던 만큼 논란이 확산했다.
법원은 또 윤 대통령을 체포·구속한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의심스러울 경우 피고인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형사사법 절차의 대원칙과 헌법정신이 기준으로 적용돼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석방 후 관저로 돌아간 윤 대통령은 외부 활동과 직접적인 발언을 삼가고 있다. 탄핵 선고를 앞둔 윤 대통령이 '헌재의 결정에 승복한다'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윤 대통령은 선고 전날까지 침묵을 지켰다.
윤 대통령 탄핵 선고는 12월 14일 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지 111일, 지난달 25일 변론 절차를 종결하고 재판관 평의에 돌입한 뒤 38일 만이다.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는 문형배 헌재 소장이 낭독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에 대한 이날 헌재의 선고를 계기로 122일간 격랑의 시간은 일단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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