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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영화감독이 ‘기생충’ 지적하며 쓴 소설의 진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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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편소설집을 펴낸 스페인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76)와 첫 장편을 펴낸 할리우드 배우 톰 행크스(69). 연합 AP·EPA


그를 모른다는 이가 없을망정 혹여 보지 않은 그의 영화가 없달망정, 소설가 이름으로는 낯설다. 스페인 출신의 그 작가가 2023년 펴낸 소설집엔 이런 문장이 박혀 있다.



“‘기생충’은 훌륭한 영화지만, 계속되는 줄거리의 반전과 극단적인 전환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각본에 다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 단정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기생충’의 세번째 파트는 완전히 다른 영화라는 느낌이 든다.”



‘기생충’은 봉준호(56) 감독의 2020년 오스카상 4개 부문 수상작 아닌가. 봉 감독의 작품을 어찌 됐건 ‘디스’한 이 소설가의 이름은 페드로 알모도바르(76). 맞다, 칸영화제, 오스카상, 골든 글로브 각기 2회 수상 등의 이력으로도 다 설명하기 어려운, 스페인을 대표하는 세계적 영화감독이자 각본가이자 제작자.



신간 ‘마지막 꿈’은 알모도바르의 첫 단편소설집으로 “여태껏 일기조차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는 서문을 끝내자마자 단편과 허구가 가미한 자전 에세이까지 12편을 엮고 있다. 색, 미장센을 통한 이미지와 상징의 미학으로 삶의 모순을 관통해 온 거장답게, 모순적일 만큼 솔직한 인물과 의식의 흐름을 통해 독자는 지금껏 어떤 작품보다 ‘알모도바르라는 장르’에 근접할 기회를 얻는다. 두 가지 특징 덕분일 것이다. 실제에 허구를 세공해낸 서사는 거개 알모도바르 자신에게서 배태된다. 직접 연출한 26편 영화에 담지 못한 인물, 담았되 납작해지고 만 인물이 감춘 본디 이야기가 여기 있다.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고 나서야 나의 수준과 역량이 소설가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장의 말은 장르의 위계나 겸손의 미덕과는 무관해 보인다. 외려 ‘나쁜 소설’을 써서라도 이야기의 제국을 완성하겠다는 욕망의 적나라한 알리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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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꿈 l 페드로 알모도바르 지음, 엄지영 옮김, 알마, 1만8800원


소설집을 갈무리하는 12번째 꼭지 ‘나쁜 소설’은 영화와 문학의 차이, 감독과 소설가의 차이에 대한 통찰로 견인된다. 와중에 미국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62)가 영화 직후 동명의 소설로도 출간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꺾고 오스카상 각본상도 거머쥔 ‘기생충’을 언급한 것. 자신 또한 극단적 변화를 시도했다 “끔찍한 결과를 낳았”던 영화 ‘키카’(1993)의 교훈을 되새기면서다. “두 영화와 두 작가를 모두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너무 흥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너스레는 한편 “소설가로서의 꿈을 포기한 적이 있다”는 작가가 이제 -더 많은 교훈을 감수해야 할지언정- ‘나쁜 소설’이라도 쓰겠다는 각오에 따른 흥취로도 읽힌다.



소설집은 ‘마지막 꿈’과 ‘방문’으로 꿰어진다. 맥락으로 보건대 각기 창작의 근원과 창작의 경로요, 형식상 수식 없는 글의 원형질 그리고 읽는 자를 압박하는 대사 따위로 소설의 면모가 두드러진 작품으로 또 각기 매김한다.



자신의 글 중 최고라는 ‘마지막 꿈’은 “엄마의 생애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는 알모도바르가 “엄마 없이 처음 맞이하는 맑은 날”의 단상이다. 어머니 카바예로를 임종한 날, 하필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을 홍보 투어하던 즈음이다. 카바예로는 20년 전부터 “자신이 원하는 식”으로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했다. 수의를 자식들에게 준비시켰고 때마다 유언을 당부했다. 궁핍한 시절, 엄마는 소일거리로 문맹 많은 마을에서 이웃의 편지를 읽어줬다. 8살 알모도바르는 편지 대필을 맡았으니, 엄마가 읽는 편지 내용이 실제 편지 내용과 다름을 모를 수 없다. 카바예로는 “필요하다 싶으면 거기 없는 이야기를 지어냈”고, 따져 묻는 아들에게 말한다. “하지만 너도 봤잖니? 이웃집 여자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현실’을 더 완전하게 만드는 ‘픽션’에 대한 신뢰, ‘자신의 방식’을 좇는 진취성과 창의성이 바로 아들에게 새긴 어머니의 유전자다.



단편 ‘방문’에선 알모도바르의 영화에 잦은 종교적 위선, 그와 대비되는 속세의 진실성, 성과 욕망, 소수자성, 트라우마 등의 화두가 활자로 압착된다. 작중 교사 신부로부터 10살 때 당한 성폭력을 24살 작가 된 루이스가 소설에 쓴다. 그의 누이 파울라(매춘부)가 미출간 원고를 들고 이젠 교장이 된 신부를 찾아가 따진다. 몇달 전 루이스는 부모와 교통사고로 죽었다. 되레 자신을 모욕한다고 ‘매춘부’를 모욕하던 신부가 소설 속 생생한 진실 앞에 결국 무릎 꿇을 수밖에 없을 때의 돌연한 결말이 어쩌면 삶의 진실이랄까. 죽지 않았던 루이스가 비로소 죽고 신부는 절규하니, 증오와 사랑이 이처럼 팽팽히 평행한다.



팬들이라면 익히 영화 ‘나쁜 교육’(2004)에서 이 소설의 자취를 봤을 법한데, 영화 속 신학교 출신 주인공이 훗날 감독이 된 동창에게 건네는 시나리오 제목이 ‘방문객’이다. “1960년대 초 내가 암울한 종교 교육을 받았”다 회고하며 자신을 영화감독으로 “키운” 세곳 중 하나로 꼽는 살레시오 수도회 기숙학교 시절이 공히 모티브다. 다른 작품들 또한 대부분 영화의 모태, 시퀀스, 기조로 선·후행 되었다. 왜 아니겠는가. 연식으로만 치면 1967~70년 사이 쓴 단편 ‘미겔의 삶과 죽음’ 등으로부터 물경 50여년치이니, 소싯적부터 문학을 열렬히 동경한 창작자 자신이요, 이야기로 “세계를 정복하고 싶었던” 거장의 욕망이 국으로 담지된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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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걸작은 만들어진다 l 톰 행크스 지음, 홍지로 옮김, 리드비, 1만9800원


마침 할리우드 배우 톰 행크스(69)의 첫 장편소설 ‘그렇게 걸작은 만들어진다’도 국내 출간됐다. 또한 난데없어 보이지만 2017년 첫 소설집을 낸 바 있다. 대학에서 창작과 영화학을 가르치는 ‘나’가 관찰하는 영화 세계가 장편의 뼈대다. 하나의 모순이 출발점이다. 시리즈물의 후속편 제작은 흥행 부담에 ‘지옥’과 다름없다 보고, “다른 은하계에서 온 악의 군주가 영어를 할 줄 알”고 슈퍼 남녀들이 키스는 하면서 “섹스는 절대 안 하고” “도시가 통째로 박살 나는데 시체 하나 안 보”이는 슈퍼 히어로물에 비판적인 30년차 유명 감독 빌 존슨이 블록버스터를 만들게 된다는 사실. 정작 블록버스터에 단 한번 출연한 적 없는 톰 행크스가 변수와 곡절의 거대한 난장을 세밀화 그리듯, 유머와 말재간으로 장장 550쪽가량(국내판)을 내달리는 소설의 함의는 “제아무리 형편없는 실패작이라고 해도… 영화를 보다 나가는 건 죄악”이란 메시지이겠다. 영화 한편에 관여한 숱한 스태프와 생태를 소설로 호명, 재현하고자 하는 작가 톰 행크스의 의중이 영화에선 곧 ‘엔딩 크레디트’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판의 격언과 관습을 직접 듣는 맛도 쏠쏠하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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