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익성 하락 불가피한 스마트폰 수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스마트폰 업계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북부 박닌·타이응우옌 공장에서 자사 스마트폰 물량의 50% 이상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만 연간 1억 대 이상의 스마트폰이 생산된다. 삼성전자의 나머지 스마트폰 물량은 인도, 인도네시아, 국내의 경북 구미 공장 등에서 생산한다.
삼성전자는 일단 미국 내에 보유 중인 재고로 이번 ‘관세 장벽’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올 초 출시한 ‘갤럭시S25 시리즈’ 모델 물량은 이미 관세 발표 전 미국으로 보냈다. 하지만 하반기(7∼12월) 출시 예정인 ‘폴더블폰 시리즈’ 등은 관세 여파를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애플도 상황은 비슷하다. 애플 스마트폰 생산의 약 90%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날 애플 주가는 수익성 악화 우려로 시간외거래에서 7% 이상 하락했다. 한편 베트남에는 삼성전기,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도 진출했는데, 스마트폰 산업이 위축되면 이들 디스플레이·부품 업체들도 연쇄적으로 악영향이 예상된다.
● 가전·TV도 생산전략 수정 고심
가전 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모두 베트남과 태국, 중국 등에서 가전과 TV 제품을 만들어 일부 물량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해당 지역의 값싼 인건비를 이용해 대량 생산한 뒤 미국으로 수출해 왔는데, 이 지역 관세가 최대 46%까지 오르게 돼 고심이 깊어졌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멕시코에 있는 가전 공장에서 생산량과 생산 품목을 늘려 대응할 수 있다.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맺고 있는 멕시코는 USMCA의 적용을 받는 가전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때 관세 적용을 받지 않는다. 다만 미국이 언제 또 멕시코에 추가 관세를 부과할지 모르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여전히 자사 미국 공장의 생산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해 LG전자는 이날 관세 전쟁 대비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했다.
가전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했다가 유예하기를 반복하고 있어 지금은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지켜보고 있다”며 “여러 생산기지 중 관세까지 고려해 수익성이 높은 곳으로 생산기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다른 기업 관계자는 “이번 상호관세는 9일 선적분부터 부과되니 정부 차원에서 미국과 협상에 나서는 등 반전을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베트남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 개별 관세 부과 반도체·자동차도 ‘흐림’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한국의 주력 수출 상품은 대부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는 이번 상호관세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기존 발표대로 이날부터 품목별 관세 25%가 적용된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 현대자동차그룹 전기차 신공장 ‘메타플랜트’가 준공하면서 미국 현지 생산 가능 물량이 늘어난 것은 그나마 다행인 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을 비롯한 배터리 업체들은 이미 미국에 생산기지가 여러 곳 있지만 원재료를 수입할 때 원가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이나 유럽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배터리 물량은 비중이 크지 않다.
한국의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는 개별 품목 관세 부과가 예정돼 있다. 각 기업이 시나리오별 대응 체계를 마련하면서 미국 측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철강 및 알루미늄 업계에는 이미 지난달 12일부터 25%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이번에 추가로 상호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제외됐다. 석유화학은 대미 수출 비중이 9% 수준이라 영향이 크지 않지만 관세전쟁으로 인한 환율 변동 등을 주시하고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이 수출 경쟁국들에 비해 크게 높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만약 인건비까지 고려해 볼 때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국내 생산 및 수출이 낫다면 생산지를 바꾸는 것도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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