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채팅방 통해 접근… 보상 제공하며 정보 빼내
"中, 한미 대만 대응책에 관심"
게티이미지뱅크 |
한 중국인이 현역 군인을 통해 한미 연합연습 계획 등 우리 군의 기밀을 탈취하려다 붙잡혔다. 체포된 중국인은 총책이 중국군과 관련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은 이 중국인이 추가로 접촉한 현역 군인이 더 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3일 군 당국에 따르면, 국군방첩사령부는 지난달 29일 제주에서 한국군의 기밀을 수집해 온 조직의 행동책인 중국인 A씨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A씨에게 내부 정보를 건넨 현역 병사 B씨도 같은 혐의로 수사 중이다. 방첩사는 B씨가 빼돌린 정보의 내용, B씨 외에 추가 연루된 인원의 존재 여부, A씨가 속한 조직의 실체 등을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A씨가 잠입 루트로 삼은 건 신분을 감추기 쉬운 오픈 채팅방이었다. 자신을 현역 군인으로 속인 채 우리 군 장병이나 장교 지원자들이 주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오픈 채팅방에 들어갔다. 이후 개별 접촉을 통해 타깃을 선정하고, 사소한 도움을 요구하며 그에 대한 보상을 제공해왔을 것이란 게 군 정보당국의 추측이다. 이는 북한 등 정보 수집책의 전통적인 접근 수법이다. A씨가 제주를 찾은 이유도 B씨에게 정보 제공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의 핵심 중 하나는 A씨가 취득한 정보가 어디로 흘러 들어갔느냐다. 수사당국은 A씨가 속한 조직이 중국군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군은 A씨 조사 과정에서 중국에 있는 총책이 중국군과 연결된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중국은 한미가 대만 유사시에 대비해 어떻게 움직일지가 최대 관심사"라며 "중국은 이번 사건 이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색해 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 중국인이 수차례에 걸쳐 군 전력을 염탐한 정황이 확인돼도 간첩죄로는 처벌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형법 98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간첩죄는 '적국'인 북한으로 범위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 군 정보사 소속 군무원이 중국 측에 해외 블랙요원 현황 등의 기밀 자료를 제공한 사실이 적발됐지만 간첩죄 대신 군 형법상 일반 이적,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지난해 6월 드론으로 부산에 입항한 미국 항공모함을 촬영한 중국인 유학생 3명 역시 간첩죄는 적용되지 않았다.
남 원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중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에 한정한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1953년에 제정돼 72년간 유지된 형법상 간첩죄법은 현시점에서 되레 간첩을 보호하는 법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