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세장벽 폐지 놓고 협상 난항 예상
모든 국가에 10%… 무역적자국엔 ‘+α’
트럼프 관세전쟁 정점, 글로벌 전면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 부과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에 투하한 ‘관세 폭탄’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었다. 미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토대로 지금껏 대부분 미국산 제품을 무관세로 수입해 오고도 대미(對美) FTA 미체결국인 일본보다 더 높은 세율의 관세를 떠안았다. 정상 외교 파행이 불가피한 대통령 대행 체제의 한계가 노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서둘러야 할 대응 협상 전망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무관세 우위가 고관세 열세로
트럼프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발표한 국가별 상호관세에서 한국을 상대로 책정한 세율은 25%(백악관 행정명령에는 26%로 표기)다. 이는 미국의 FTA 체결 상대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등 20개국과 포괄적 FTA를 체결한 상태인데 이 가운데 호주,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도미니카공화국,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모로코, 페루, 싱가포르, 온두라스 등 11개 나라는 기본 관세율인 10% 적용 대상으로 분류됐다. 이스라엘(17%), 니카라과(18%), 요르단(20%)이 기본 세율보다 높았지만 한국보다는 낮았다.
미국과 사실상 무관세 협정(USMCA)을 맺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의 경우 마약 및 불법 이민자의 미국 유입 단속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2월 초 일찌감치 25% 관세를 맞았는데 이후 무역협정 적용 품목에 대해 적용 유예 조치를 받아 내며 여전히 미국과 상당 규모의 상품을 무관세로 거래하고 있다. 한국과 처지가 다른 셈이다.
25%는 심지어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한국의 대미 수출 경쟁 상대인 일본(24%)이나 유럽연합(EU·20%)보다도 높은 수치다. 그간 무관세 효과로 누려 온 가격 경쟁력 우위를 잃는 것은 물론 오히려 더 많은 관세를 물게 돼 열세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들과 지금보다 훨씬 더 불리한 여건에서 수출 경쟁을 벌여야 할 자동차는 한국의 대미 수출 비중 1위 품목이다.
정상 외교 공백이 손해 불렀나
이 정도로 한국이 곤경에 빠진 것은 일차적으로 지난해 한국이 대미 무역 흑자를 너무 많이 늘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각국 상호 관세율을 산정할 때 자체 계산한 해당 국가 관세를 기준으로 삼았는데 한국의 대미 관세를 50%라고 산정했다. 한미 FTA 때문에 사실상 무관세인 것을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수치다. 알고 보니 한국뿐 아니라 10%를 초과하는 상호 관세를 부과받은 대부분 국가의 대미 관세라고 표기된 숫자가 각국의 대미 무역 흑자를 대미 수출액으로 나눈 숫자와 일치했다. 일본은 지난해 트럼프 관세를 우려해 무역 흑자 규모를 줄인 반면, 우리나라는 무역 흑자가 사상 최대치에 달하면서 이 수치가 상대적으로 컸던 것으로 보인다.
리더십 공백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사전 협상이 어려웠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은 본보에 “한국이 FTA 파트너 국가인 사실을 고려할 때 납득하기 힘들 정도의 높은 관세율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 간 대면 접촉으로 설득되는 유형의 인물인 만큼 한국의 정치 공백 사태도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다만 백악관은 관세 산출 시 △해당 국가의 관세와 △비관세 무역 장벽 △환율 조작(가격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국 통화 가치 절하) 효과를 활용해 계산했다고 주장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한국은 사실상 높은 비관세 장벽 때문에 고율 관세를 부과받은 셈이 된다. 이날 발표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콕 집어 거론한 것 중 하나도 비관세 장벽인 한국의 수입차 규제였다. “한국, 일본 등이 부과하는 모든 비(非)금전적 (무역) 제한이 어쩌면 최악”이라며 “이런 엄청난 무역 장벽의 결과로 한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81%가 한국에서 생산됐고, 일본 내 자동차의 94%가 일본에서 생산됐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도표를 들고 국가별 상호관세 세율을 소개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
협상 여지는 있다. 국가별 상호관세는 미국이 각국과 새로 맺을 무역 협정 관련 협상의 시작점일 수 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방송 인터뷰에서 “기준선을 재설정한 뒤 국가들과 양자 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배포된 백악관 참고 자료에도 “무역 상대국이 비상호적 무역 협정을 시정하고, 경제·국가 안보 문제에 대해 미국과 협력하는 중요 조치를 취할 경우 관세를 인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상호관세의 기준점이 사실상 대미 무역 흑자인 것으로 드러난 만큼, 당장은 낮추는 것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고위 당국자는 이날 사전 브리핑에서 “현재 우리는 이 새로운 관세 체제가 자리 잡게 하는 데 매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상에 들어가더라도 그간 미국이 무역 장벽으로 거론해 온 각종 비관세 장벽을 폐지하라는 압박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韓, 5일부터 10%, 9일부터 26%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발표한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 행사의 주제는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였다. “오늘은 (미국의) 해방의 날”이라며 “미국 납세자들이 50년 넘게 갈취를 당해 왔지만 더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공개된 미국의 상호관세는 보편관세 성격의 기본관세와 국가별 개별 관세 두 가지로 구성됐다.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을 토대로 모든 국가에 10% 세율의 기본관세를 5일부터 우선 부과하고, 미국 입장에서 무역 적자가 큰 한국 등 60여 개 국가에는 국가별로 차등화된 개별 관세를 10%에 추가한 상호관세를 9일부터 물린다는 게 기본 뼈대다. 국가별 관세 부과 국가는 ‘최악의 침해국’으로 명명됐다.
이미 품목 관세를 부과한 철강·알루미늄 및 자동차, 앞으로 관세 부과가 예상되는 반도체, 의약품, 목재 등에는 상호관세가 중복 적용되지 않는다.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이 한국의 대미 주력 수출 품목인 만큼 한국으로서는 불행 중 다행인 셈이다.
모든 수입품에 10% 보편관세를 부과하고 주요 무역 상대국에 고율 관세를 물리는 이번 상호관세 도입은 중국·캐나다·멕시코 등 일부 국가를 상대로 포문을 연 트럼프발 관세 전쟁의 정점에 해당한다. 관세 부과 품목도 늘릴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만큼 전쟁이 계속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미국은 약 30년 전 관세 장벽을 낮추는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세계화 물결을 주도한 나라다. 자유 무역 체제가 무너질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한 미국 제조업 기반 재건이 가시화하는 것보다 먼저 관세 보복 악순환에 따른 전쟁 격화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이어질지 여부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