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품목관세만 적용... "최악은 피해"
관세 압박 의료기기 "손실에도 버티기 뿐"
업계 일각 "저가경쟁 후발주자 앞설 기회"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월 26일 충북 청주시 오송 첨단의료복합단지에서 시력장애 보조형 가상현실(VR) 기기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
트럼프 정부가 한국에 대한 25% 상호관세 발표에 의약품을 제외하면서 제약·바이오 업계가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이제 막 미국 시장 공략에 성과를 내고 있는 임플란트, 미용의료기기, 진단키트 등 의료기기 기업들은 관세 압박을 고스란히 겪어야 할 위기가 닥쳤다.
미국 정부가 2일(현지시간) 한국에서 제조해 미국이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 25%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단, 품목별 관세가 부과된 철강, 알루미늄과 부과 예정인 의약품, 목재 등은 상호관세에서 제외됐다.
앞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가 한국 의약품 및 의료기기의 가격과 보험급여 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고 지적해 상호관세 부과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의약품은 이날 발표에서 빠져 향후 구체화할 품목별 관세까지 가중된 최대 50% 수준의 '폭탄 관세'는 피하게 됐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은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면서도 "품목별 관세가 얼마나 까다롭게 적용될지 구체적인 내용을 더 파악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 경내 로즈가든에서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라는 행사를 열고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AP 뉴시스 |
반면 의료기기 분야는 상호관세를 그대로 적용받게 됐다. 의료기기 업계에서는 이제 막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진입하는 시점에서 회피하기 어려운 관세 압박을 떠안게 됐다며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주요 타격 제품군은 임플란트, 영상진단장치, 미용의료기기, 진단장비 등으로 예상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이제 막 뚫어놓은 미국 판로를 포기할 수 없어 수익의 대부분을 포기하고도 버티는 전략이 유일하다"며 "대다수 의료기기 기업은 미국 현지 위탁생산을 추진하거나 신규 공장을 설립할 자금 여력이 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
미국 진출 준비해온 기업들은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씨젠, 랩지노믹스, 지노믹트리, 바디텍메드 등의 진단기업이 그런 사례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미국 체외진단기업 메리디언 바이오사이언스를 약 2조 원에 인수했다. 오스템임플란트는 2007년 미국 현지법인 하이오센을 설립했고, 2022년 필라델피아 생산시설을 증설했다.
한 의료기기 제조사 관계자는 "미국 관세 부과는 제품 기술력과 공략 시장이 명확할 경우 오히려 저가로 경쟁하는 후발주자들을 떨쳐낼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미리 현지 생산시설에 투자했거나 현지법인, 유능한 파트너를 갖춘 경우는 비교적 관세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재명 기자 nowlight@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