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휩쓴 ‘플로우’는 인간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고, 대사 역시 한마디도 없다. 그저 놀라우리만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동물의 우정과 성장 스토리로, 때로는 공포스럽게 육지를 삼키고 때로는 눈이 부실 정도로 유려하게 흘러가는 물결만으로 85분간 몰입하게 만든다.
[※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 판씨네마㈜) |
산 정상에 거대한 고양이 상이 있는 곳. 아마도 오랜 기간 고양이를 키웠을 듯한 인간의 집 앞에 놓인 고양이 조각상들.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라트비아 작품 ‘플로우’를 만든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1994년 생으로, 첫 장편 애니메이션 ‘어웨이’를 작화부터 편집, 음악까지 1인 제작으로 완성해 주목받았다. 이번에도 역시 거의 혼자 만든 것과 마찬가지인 ‘플로우’로 국제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63관왕을 휩쓸며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애니메이션 연출가가 됐다.
(사진 판씨네마㈜) |
‘플로우(flow)’라는 제목처럼 영화에서는 ‘물’, ‘물결’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영화 초반의 평화로운 땅을 집어 삼킨 무서운 물, 아기 고양이가 처음으로 직접 깊은 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아오는 장면, 배를 집어삼킬 듯한 파도의 격랑 등 물은 주인공의 성장과 극복의 주요 배경이다. 그 과정에서 고양이는 동물들에게 자신의 곁을 내어주고, 함께 공존하는 법을 배워가며 팀을 이뤄 험난한 파도를 헤쳐나간다.
‘플로우’는 디즈니나 픽사,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속 의인화된 동물의 대사나 움직임 없이 진짜 동물처럼 소통하고 움직인다. 그러나 그 눈빛 속에 인간과 인간의 삶이 보인다. 대홍수로 인한 종말은 기후 재난 등 인간사의 근미래를, 배는 성서 속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킨다. 뚜렷한 선악 구도도 없다. 그저 종으로서의 생존을 위해 크고 작은 사건을 겪으며 앞으로 나아갈 뿐, 그 속에서 자연이 지닌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서사 또한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극은 해피엔딩 대신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고양이는 이제 아기 고양이가 아니며, 또 혼자도 아니다.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홀로 바라보던 고양이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다른 동물들과 함께 물속을 바라본다. 수채화 같은 배경 색감과 물결 위 윤슬이 너무나 아름답다. 동물들의 목소리와 눈빛, 움직임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작품. 러닝타임 85분.
(사진 판씨네마㈜) |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74호(25.04.08)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