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소리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넷플릭스 |
“대본을 스르륵 놓고 눈물을 닦으며 ‘이건 해야겠다’ 싶었어요. 해녀 이모 역할을 하라고 했어도 했을 거예요.”
배우 문소리(50)는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와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렸다. 4대에 걸친 엄마와 딸 이야기로, 굴곡진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해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그 중심에는 애순이 있다.
2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만난 문소리는 “인간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극을 보며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애순이를 살린 건 온 동네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해녀 이모들, 아빠 관식(박해준)의 변치 않는 사랑이 그를 키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과 관계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좋았다”고 전했다.
문소리는 대본을 읽으며 실제 어머니 이향란 여사가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 51년생 애순을 보며 52년생인 엄마가 떠올랐다고 했다. 어머니는 포장마차 장사를 하며 목숨 걸고 딸을 키웠다. 그는 “어머니는 일찍 결혼해 없는 살림에도 부족함 없이 저를 길러주셨다. 제가 양가의 첫 딸이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어머니 덕분에 부족함 없이 자랐다. 자식을 키우느라 일생 노력하신 부모님이 떠올랐다”고 했다.
'폭싹 속았수다' 스틸사진. 넷플릭스 |
애순은 딸에게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한다. 문소리는 “실제 엄마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하시는데, 그들이 부족해서, 노력이 덜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이제 안다. 만약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그분들 절반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문소리도 딸을 둔 엄마다. 딸을 언급하자 얼굴이 유채꽃처럼 환해졌다.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괜히 비죽거리며 말했다. “딸이 재밌게 봤대요. 그런데 ‘눈물이 나려다가도 엄마가 나오니까 눈물이 안 나더라’고 하더라고요. 영화 ‘사이렌’을 보고도 오열한 애인데, 엄마가 나오니 그랬다고요.”
노년의 애순이를 연기하며 자신의 미래를 미리 본 기분이었다고 했다. 문소리는 노역 분장을 위해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채로 매일 촬영장으로 향했다. 노인 영상도 찾아보며 실제처럼 구현하기 위해 애썼다. 노년의 애순이는 극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중요한 인물이기에 공을 들인 것이다.
“마지막 촬영이 요양원 장면이었어요. 1월 말 여수에서 찍었는데, 촬영 날 비가 왔어요. 봄날처럼 따뜻해야 하는데 어쩌나 싶었는데, 분장 마치고 나갔더니 기적처럼 해가 났더라고요. 바람도 안 불고 따뜻해져서 잘 찍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그 뒤로 기억이 사라졌어요. 정신을 차리니 대학병원 응급실에 누워있더라고요. 독감을 앓아 아팠지만, 잘 마무리해서 다행이었어요.”
배우 문소리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넷플릭스 |
"돌아보니 수많은 날이 봄이었더라." 문소리는 애순이의 이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의 인생 계절은 어디쯤인지 물으니 호방하게 웃으며 말했다. “주렁주렁 열릴 줄 알았는데요, 자락자락 털리고 있어요. 털어가는 사람이 많네요” 그러면서 몇 년 전 떠난 강원도 여행을 추억하며 가수 이정석의 ‘여름날의 추억’(1989)을 흥얼거렸다.
‘짧았던 우리들의 여름은 가고, 나의 사랑도 가고. 너의 모습도 파도 속에.’
문소리는 노래를 멈추고 말했다. “여름이 갔어? 그렇게 슬픈 노랜지 몰랐는데, 이 작품을 하고 나서는 만날 봄인 듯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여름도, 겨울도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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