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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때부터 한 사람만 바라본 해바라기, 급장도 계장도 아닌 ‘영부인’을 꿈꿨던 소년. 무쇠처럼 단단하고 바위처럼 우직한 관식은 내내 애틋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서 장년 관식을 연기한 배우 박해준(사진)은 “요즘 어르신부터 또래, 젊은 친구들까지 고맙다고 한다”며 “어떻게 드라마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지 신기할 뿐”이라며 웃었다.
구석구석 너무 많이 써 빨리 고장 나버린 가전제품처럼 곳곳이 성치 않았다. 거친 제주 바람에 쩍쩍 갈라지고 해진 손끝은 59년 짧은 삶, 고단한 희생의 결과였다. 이런 아버지 관식의 서사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힘은 관식이 박해준이어서 가능했다.
정작 그는 “극이 흘러가는 대로 있었을 뿐인데 회상 장면, 내레이션, 여러 배우의 연기가 어우러진 덕에 우직하고 성실한 인간, 관식이 캐릭터가 만들어졌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청년 관식’으로 절반의 삶을 공유한 박보검의 관식은 그에게 ‘참고할 데이터’였다. 그는 “(박)보검씨가 깔아준 판에 발을 얹은 것”이라며 “1~2막(봄·여름)을 보는데 내가 보검씨의 미래로 나올 때마다 그의 잔상이 남아있어 너무 다행이다 싶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관식을 드라마 최고의 ‘판타지’이자 ‘희생의 아이콘’이라 했지만, 박해준은 “관식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 산 인물이기에 그의 삶을 희생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 ‘(양관식이) 우리 아빠 같다’는 반응이 엄청 많더라”며 “이 세상에 관식이가 그렇게나 많았더라”며 웃었다.
삶의 끝자락을 연기해야 할 때는 물리적 노력이 필요하기도 했다. 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는 관식을 연기하기 위해 그는 불과 2주 만에 8㎏을 감량했다. 박해준은 “아무래도 병원 장면에선 외형상의 변화가 뚜렷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2주일간 계획을 세워 격투기 선수들이 (계체량 때) 하는 것처럼 수분을 빼 7∼8㎏을 줄였다”고 말했다.
“‘폭싹 속았수다’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여러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 때마다 한 편씩 꺼내보고, ‘나에게도 의지할 누군가가 있었지’라고 돌아보는 이야기로 남는다면 좋겠습니다.”
고승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