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재집권 뒤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 특정 국가,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등 일부 품목에만 관세를 부과하며 전초전을 벌인 데 이어 관세 적용 대상과 범위를 대폭 넓힌 것이다. ‘트럼프발(發) 통상전쟁’이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 세계 경제질서를 재편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야심이 보인다고 전했다.
이번 관세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정원 ‘로즈가든’에서 직접 발표한다. 로즈가든은 역사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주요 정책을 발표하고, 해당 정책의 권위와 정당성을 강조할 때 활용됐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이번 관세 발표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번째 로즈가든 행사”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자랑스럽게 명명한 미국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세 조치 발표 행사에는 백악관과 내각 주요 인사들도 대거 참석한다.
지난해 미국에 8번째로 큰 무역적자를 안긴 한국 역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폭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31일 내놓은 ‘2025 국가별 무역장벽(NTE) 보고서’에서 조건부 무기거래 관행인 ‘절충 교역’까지 문제 삼는 등 7쪽에 걸쳐 조목조목 한국의 ‘비(非)관세 장벽’을 지적했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대규모 관세 부과 직전에 명분을 깔아둔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타깃이 될 일부 국가에는 2일이 ‘속박의 날’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특정국가→품목→전세계… 트럼프, 관세 ‘타깃’ 계속 넓혀
[트럼프 관세 폭풍]
“美 관세왕 이후 가장 강력조치” 평가
FT “한국 수출 7.5% 감소할수도”… 美도 스태그플레이션 타격 우려
中-EU “강력한 반격” 정면 승부… 日-英은 “신중한 접근” 협상 초점
2일(현지 시간·한국 시간 3일 오전 5시)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대규모 관세 부과 정책 발표는 자유무역에 기반한 국제 통상질서를 크게 바꿀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후 펼쳐진 통상전쟁 또한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그동안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 특정 국가,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등 특정 품목을 겨냥했던 ‘트럼프표 관세 폭탄’이 사실상 전 세계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19세기 미국의 모든 수입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했던 ‘관세왕’ 윌리엄 매킨리 전 대통령(1897∼1901년 재임) 이후 가장 강력한 관세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응하는 각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중국은 모두 미국에 반격할 뜻을 밝혔다. 일본 기업은 생산 거점을 관세의 영향을 덜 받는 곳으로 옮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영국도 막판 협상을 통한 관세 면제 혹은 관세율 축소를 기대하는 모양새다.
다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관세 부과 조치가 미국 경제에도 타격을 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경제전문매체인 CNBC는 미국 내에서 고물가와 저성장이 공존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상황도 다르지 않다. 1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애스턴대 연구 결과를 인용해 상호 관세가 부과되면 한국 수출이 7.5% 감소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뒤 전방위로 확대된 관세 폭탄
백악관은 1일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와 관련한 최종 방침을 확정했다”라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동안 백악관 안팎에선 모든 수입품에 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국가마다 각기 다르게 상호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미국이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 일부 국가에 초점을 맞춰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등이 거론돼 왔다.
다만 특정 국가와 품목만 타깃으로 했던 기존 관세 정책보다 어떤 형태로든 더 큰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뒤 현재까지 미국은 중국에 총 20%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선 25%의 관세 부과를 발표한 뒤, 2일까지 한 달간 유예했다. 산업별로는 지난달 12일 전 세계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또 3일부터는 자동차에 25%의 관세가 부과된다.
블룸버그통신은 1일 대미 무역흑자 상위 15개국을 대상으로 각기 다른 상호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54%)이 가장 높고 인도(53%), EU(52%), 캐나다(38%) 등이 뒤따랐다. 한국의 상호 관세율은 16%로 15개국 중 가장 낮은 세율을 부과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FT는 미국이 전 세계에 25%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고 상대국이 동일한 보복 조치에 나서면 미국의 수출이 66.2% 감소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멕시코(35%), 캐나다(32.6%), 일본(7.6%) 순으로 수출 감소가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의 수출 감소율은 7.5%로 세계 주요국 중 5번째였다.
● EU-中 “강력 반격”
전 세계 통상 전쟁은 격화될 것이 확실시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일 “우리는 보복을 원치 않지만, 강력한 보복 계획을 갖고 있으며 필요하면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도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압박과 협박이 계속되면 단호하게 반격할 것”이라고 했다. 또 2일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자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제한하는 조치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중국 국가개발개혁위원회(NDRC)가 최근 몇 주간 미국에 투자하려는 중국 기업에 대한 승인을 보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도 통화를 갖고 미국에 공동 대처하기로 했다.
일본과 영국은 협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미국에 자동차 관세 면제를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국익을 위해 차분하고 침착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즉각 강경한 대응에 나서진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이번 관세 조치가 자동차 산업 등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매우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라면서도 “한국만 겨냥한 것이 아닌 만큼 각국 대응, 이에 대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반응 등을 본 뒤 최적의 방안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관세 정책이 미국 경제를 침체에 빠트릴 것이란 우려도 상당하다.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12개월 후 미국 경제의 침체 확률을 기존 20%에서 35%로 상향했다.
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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