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8일 간호사가 의료 현장에서 더 많은 진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되며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가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
PA(진료지원) 간호사 제도 도입을 핵심으로 한 ‘간호법’ 시행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이들의 업무를 규정하는 시행규칙 제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 애초 3월 말 입법예고 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보건복지부는 “법령 심사 과정 중 ‘조문 정비’가 필요하다”며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복지부는 오는 4일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이 참여하는 ‘전문가 자문단 회의’를 다시 열고, 주요 내용을 재검토할 예정이다.
간호법의 하위법령인 시행규칙은 입법예고를 한 뒤 의견수렴과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서 확정된다. 아무리 늦어도 4월 안에는 결정해야 6월 21일로 예정된 간호법 시행에 차질이 없을 전망이다. 문제는 시간에 쫓기다 보니 ‘졸속’ 처리될 수 있다는 우려가 PA 간호사 제도의 당사자인 의사, 간호사 모두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2일 서울 상급종합병원 PA 간호사 A씨는 “지난달 정부가 추진 중이라는 PA 간호사의 가능 업무 목록을 미리 받아보고 황당했다”며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기준도 없이 분류한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시행규칙 제정 논의를 지켜본 의사 B씨 역시 “정부가 시간을 끌다가 간호법 시행에 맞춰서 처리하고 결국 문제는 현장에서 수습하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PA 간호사는 누구인가
지난해 8월 28일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은 이른바 ‘수술실의 유령’이라 불린 PA 간호사를 양성화한 것이다. ‘의사 보조’ 혹은 ‘진료지원인력’이라는 뜻의 PA(Physician Assistant)는 의사가 담당하는 의료행위 일부를 분담한다. 이들은 한국 의료계에서 엄연히 존재했지만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다. 의료법상 이들이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이 ‘무면허 의료행위’였기 때문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렇게 존재하지만 인정받지 못한 PA 간호사가 지난해 12월 기준 1만7103명이었다.
한 대학병원에서 PA들과 의사가 수술을 하는 모습. 독자가 제공한 사진을 만화화했다. 오른쪽 두번째가 의사이고, 의사의 양 옆에 있는 두 사람이 PA다. 맨 왼쪽은 PA가 아닌 수술실 간호사다. |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을 개선하는데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은 의·정 갈등이었다. 지난해 2월 의대증원을 도화선으로 전공의 사직 문제 등이 발생하며 의료현장에 공백이 생겼다. 정부는 간호사의 진료지원 업무를 양성화해 해당 공백을 메꿀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3월 ‘한시적 시범사업’ 이라는 이름으로 종합병원 및 수련병원 간호사가 의사 업무의 일부분을 수행하는 것이 허용됐다. 순차적으로 PA 간호사의 업무 수행 근거, 요건 등을 다룬 간호법이 제정됐고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간호법은 PA 간호사 업무의 구체적 기준과 내용을 보건복지부령(시행규칙)으로 정하게 했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현장 의견을 듣겠다며 지난해 10월부터 진료지원업무 제도화 자문단을 운영했다. 환자단체·정부위원·보건의료단체·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자문단은 지난 2월까지 총 7차례 회의를 마쳤다.
PA 간호사의 업무, 책임의 한계는 어디인가
시행규칙에서 다룰 핵심 내용은 PA 간호사의 ‘업무 목록’이다. 이에 대한 복지부의 입장은 “이미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이를 준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복지부가 시범사업을 수행하며 발표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에는 진료지원행위를 검사, 치료 및 처치, 수술, 처방 및 기록 등 총 10개의 항목으로 분류했다. 각각의 항목에는 골수 천자, 복합 드레싱, 수술 부위 봉합 등 세부 항목 90여개가 있다. 이를 전문간호사, 가칭 전담간호사, 일반 간호사가 각각 할 수 있는 업무, 할 수 없는 업무로 분류해뒀다.
복지부는 이를 시행규칙에도 활용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다르다. PA 간호사 C씨는 “의·정 갈등으로 인한 비상상황에서 한시적으로 가능하게 한 업무를 PA 간호사가 앞으로 전부 담당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정부나 병원은 비상상황이니 이 업무를 하라고만 했지 ‘왜 이 일까지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설명해준 바도 없다”고 말했다. 자문단 논의 과정에서도 해당 문제는 지적됐다. 이에 따라 실제 시행규칙에 PA 간호사 업무로 명시된 것은 50여 개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A씨가 미리 받은 PA 간호사의 가능 업무 목록 중 일부/A씨 제공 |
A씨는 “바늘로 찌르거나 칼을 대는 것과 같은 피부 침습적인 업무는 거의 다 불가능하게 하고 석고 붕대(통깁스), 부목(반깁스)과 비침습적인 업무는 가능하게 해뒀다”며 “붕대나 부목은 각도가 잘 못 되면 환자 관절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오히려 피부 침습적인 업무보다 간단하지 않은데 무슨 기준으로 나눈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검사 및 판독 의료 초안 작성을 가능하게 했는데 간호사 교육 과정에서 따로 영상 판독 교육을 받는 것이 없는데 이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덧붙였다.
업무 분류 기준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익숙지 않은 업무가 늘어날 가능성도 생겼다.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복지부 산하에는 조정위원회가 설치되고, 각 병원에서 ‘PA 간호사 업무’의 추가를 원하면 이를 해당 위원회에 신청하도록 하는 내용이 시행규칙에 담겼다. 해당 논의 과정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규정상 조정위원회가 심의해 PA 간호사에게 새로운 업무를 밀어 넣는 것이 가능한 것이 맞다”며 “조정위원회를 통해 특정 업무가 PA 간호사가 해도 되는 업무로 확정되면 다른 병원에서도 그 업무를 PA 간호사에게 떠넘기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의협 역시 비판에 나섰다. 의협 관계자는 “복지부 구상은 조정위원회를 1년에 네 차례 열어서 심의하겠다는 것인데 각 의료행위를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판단해 PA 간호사 업무로 적합, 유예, 부적합 판정을 한다는 것인지 기준이 없다”며 “구체적 의료 행위에 관해서도 최소한 무슨 교육이 있어야 하고, 감시·관리·책임에 관한 내용도 있어야 하는데 그 역시 전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복지부는 ‘PA 간호사가 의사를 대신해 시술을 할 경우 환자는 이를 알아야 하는가, 몰라도 되는가’ 등의 단순한 문제조차 답을 내놓고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PA 간호사가 위임된 업무를 수행하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 역시 쟁점이다. 자문단에 참여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정당하게 위임을 받아서 발생한 사고라면 의사에 상응하는 보호조치가 취해져야 하고, 특히 의사의 최종 승인(Co-Sign)을 받는 처방 및 기록 관련 문제가 생길 경우 의사가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반면, 의협 측 관계자는 “시행규칙에 따르면 적절하게 수련받아 자격을 갖춘 사람이 PA 간호사가 되는 만큼 직무 범위 내에서 발생한 의료사고는 원칙적으로 행위자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며 “PA 간호사들은 이 부분을 제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적 책임 문제를 두고 간호사와 의사의 대립이 첨예하지만 복지부는 한 발 떨어져 있다. 시행규칙 관련 논의를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논의 순서가 틀렸던 것 같다”며 “PA 간호사에 대한 현장 목소리를 꼼꼼히 듣고 충분히 이해한 뒤 이견 좁히기부터 시작했어야 하는데 이제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안을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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