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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 좌초의 함의: 지배구조 천국과 그들만의 리그 [마켓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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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연 기자]

# 다시 한번 우리가 '지배주주만의 천국'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4월 1일 상법 개정안에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일반주주 보호에도 역행하고, 국가 경제 전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그가 밝힌 이유다.

# 도대체 상법을 얼마나 많이 손봤길래 국가 경제를 흔든다는 걸까.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쓴 걸까. 실수로 상법이 아닌 헌법이라도 고친 걸까. 그렇지 않다.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 이유가 개정된 상법 글자 수보다 많다. 상법 개정이 좌초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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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대행이 상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사진 | 뉴시스]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넓히는 데 있었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도 사유재산·회사·주주 등을 규정한 우리나라의 다양한 법 조항에서 당연히 도출해 내야 할 것이었다.

우리나라 법원이 오랜 기간 지배주주에게 유리하도록 이사의 충실의무를 좁혀서 판결해 왔을 뿐이다. 실제로 상법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의 문턱을 넘더라도 재벌총수와 같은 지배주주, 이들을 도와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준 경영진에게만 영향을 준다.

사실 낡은 지배구조는 우리 경제에 수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저평가된 증시는 기업과 각종 펀드가 국내에서 충분한 자본을 확충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의 유망한 스타트업이 해외로 모회사를 이전해 직상장하는 건 단적인 사례다. 중산층 자산 증식이 부채가 많이 필요한 부동산 일변도로 흐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소수의 재벌이 시장 경쟁을 방해하는 것도 구태의연한 지배구조 탓이다.

이런 측면에서 상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상법을 바꿔야 지배주주의 부당한 압력으로 희생되는 계열사와 소액주주가 없어지고, 주식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덕수 국무총리 대행이 상법 개정안을 거부하면서 우리는 기회를 또 놓쳤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차라리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증시를 가진 서구권 나라들의 대안이 되는 게 상책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낡은 지배구조는 주주자본주의, 주주민주주의 논란 등으로 머리 아픈 전세계 지배주주들에게 조세피난처와 같은 안도감을 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인도 정도를 제외하면 '지배구조 피난처' 분야에서는 경쟁자도 없어 보인다. 우리가 안정적인 '지배구조 피난처'라는 사실은 실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우리나라 76개 대규모기업집단은 2021년 기준으로 국가 출하액의 64.9%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중 절반인 30.2%가 5대 그룹에서 나온다. 우리나라 480개 산업 분야에서 5년간 상위 기업 순위가 바뀌지 않은 독과점 분야는 480개 중 52개이고, 10년간으로 범위를 넓혀도 무려 39개 분야가 사실상 독과점 체제로 운영된다.

잠재적 고객의 상황을 알면 더 좋다. 서구권 기업의 지배주주들은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지금까지는 주주자본주의 차원에서 회사를 운영해도 괜찮았다.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수익을 극대화해 주주에게는 배당을, 근로자에게는 임금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만으로도 시장의 존경을 받았다.

주주(shareholder)보다 넓은 의미인 이해관계자(stakeholder)를 회사 의사결정 과정에 일부 도입하는 절충안도 수익 극대화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여졌다. 이해관계자는 직원, 거래처, 정부, 시민단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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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이는 회사 의사결정 과정에 민주주의적 절차가 필요하다는 주주민주주의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구권에서는 둘 다 오래된 개념이고,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다만, 전세계 지배주주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건 겹치지 않는 부분이다.

가령, 차등의결권이 그렇다. 주당 의결권 행사가 1표가 아니라 100표인 차등의결권 주식의 경우 주주자본주의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주주민주주의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론 머스크의 지난해 과대 성과급 소송은 더 복잡하다. 미국 법원은 머스크의 560억 달러 규모 성과급 지급이 전체 주주 80%의 찬성을 얻었지만 '회사가 제공한 정보가 부족했다'는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취소시켰다.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칙, 수익 최대화라는 자본주의 원칙을 모두 충족했지만, 법원은 일론 머스크가 이해상충 발생이 우려되는 지배주주라는 데 주목했다.

회사와 머스크는 성과급 문제의 주요 사항을 주주들에게 완전히 알려야 했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명시되면, 그 행동이 공정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도 회사와 지배주주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은 '지배구조 피난처'에서라면 소송이 시작되지도 않았을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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