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발표한 2025년 국별 무역장벽보고서(NTE)는 겉보기에 예년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전략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상호관세에 이목이 집중된 사이, 이 보고서는 한국의 정책 주권을 겨냥한 또 다른 압박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보고서 전체 400여 페이지 중 한국 관련 내용은 7페이지로, 지난해보다 1페이지 줄었다. 그러나 분량의 감소가 압박의 감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용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방위산업 조달에서의 절충교역 관련 내용이 새롭게 제기된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전자상거래와 디지털 무역장벽 관련 분량이 대폭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 두 사안은 모두 국내 정책적으로 민감한 영역이다.
방위산업 절충교역은 본래 국내 기술과 산업 육성이라는 명분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무역장벽으로 규정함으로써 국가안보라는 카드마저 무역협상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려 한다. 이는 향후 방산계약 과정에서 '비차별성'이라는 명분하에 미국 기업에 유리한 조건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전자상거래와 디지털 무역장벽 분야는 올해 보고서에서 비중이 크게 늘었다. 네트워크 사용료, 온라인플랫폼 규제, 데이터 이동제한, 개인정보법 개정 등이 주요 표적이 됐다.
특히 네트워크 사용료와 관련해 미국은 2021년 이후 발의된 법안들이 외국 콘텐츠 업체에 불리하고 한국의 3대 ISP 과점 구조를 심화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와 국회의 디지털 기업 규제 제안, 위치기반 데이터 수출 제한, 개인정보의 국외 이전 제한 등도 문제 삼았다.
국가핵심기술 보호를 위한 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CSP) 활용 제한도 새롭게 지적됐다. 미국은 이 조치가 공정한 시장 접근을 저해한다며 투명성 제고와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상호관세 부과와 비관세장벽 문제 제기는 모두 무역 상대국에 대한 압박이지만, 그 성격은 뚜렷이 다르다. 상호관세는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효과를 노린다. 특정 품목에 관세를 부과해 수출가격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관련 기업과 산업에 즉각적인 타격을 입힌다.
반면 비관세장벽 문제 제기는 간접적이고 구조적인 압박이다. 규제, 인증, 허가절차, 지식재산권, 데이터 이전 등 제도 전반을 대상으로 하며, 장기적으로 국내 정책 조정을 강요한다. 이는 소비자 보호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책까지도 '비우호적인 투자환경'으로 낙인찍을 수 있어 정책 주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NTE 보고서'는 최근 무역장벽의 개념을 재정의하며 미국의 통상정책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2025년 보고서에서는 무역장벽을 "공정한 경쟁을 왜곡하거나 약화시키는 정부의 법률, 규정, 정책 또는 관행"으로 정의하면서 특히 "비시장적 정책 및 관행을 포함"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2024년의 "국제적인 상품 및 서비스 교역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정부 조치"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다. '비시장적 정책'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한 것은 중국 등 특정 국가를 겨냥하면서도, 동시에 한국과 같은 동맹국의 산업정책까지 무역장벽으로 규정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힌 것으로 해석된다.
이제는 개별 사안에 대한 단기적 대응을 넘어, 체계적이고 선제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미국의 통상 압박이 일회성 조치가 아닌 제도 전반에 대한 구조적 개입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국제 통상환경 변화의 방향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둘째, 정부와 국회의 통합적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NTE 보고서'가 행정부는 물론 의회와도 연계되어 있기에, 산업통상자원부뿐 아니라 각 소관 부처 간의 정책 조정 기능을 강화하고 국회의 입법 대응 역량도 함께 제고해야 한다.
셋째, 산업계의 선제적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국 산업계가 'NTE 보고서' 작성에 직접 참여하듯, 한국 산업계도 해외 진출 시 겪는 제도적 장벽을 체계적으로 수집·분석하고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
넷째, 지속가능한 규제 거버넌스를 위한 공공-민간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규제의 목적과 효과, 글로벌 기준과의 정합성을 사전에 검토하고, 공공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설계해야 한다.
상호관세 부과가 전면에 나선 통상전쟁의 포성이라면, 비관세장벽은 침묵 속에서 진행되는 장기전의 성격을 띤다. 당장의 피해는 적어 보이지만, 정책 주권을 침식하는 더 근본적인 위협일 수 있다.
특히 이번 보고서에서 처음 지적된 방위산업 절충교역 문제는 국가안보와 산업정책의 충돌 지점이라는 점에서 향후 중요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또한 디지털 무역장벽 분야의 확대는 한국의 데이터 주권과 글로벌 디지털 기업 간의 갈등이 심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2025 NTE 보고서'는 표면적으로는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더욱 강력해졌다. 상호관세와 비관세장벽이라는 이중의 통상 압박 속에서 한국은 국가안보와 경제 이익, 정책 주권과 국제 규범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지혜가 요구된다. 이는 단순한 통상 문제가 아닌, 국가 경쟁력과 주권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글 : 조상래(xianglai@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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