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기업 43곳 중 23곳 산불 피해
"저리 대출만? 빚더미에 빚 더내라니"
"왜 기업 지원 대책 없나" 항의에
경북도 "국회 특별법에 포함하겠다" 진땀
지난달 31일 경북 안동시 남후면 남후농공단지 내 한 공장이 불에 타 녹아내려 있다. 안동=김재현 기자 |
경북 안동시 남후면 남후농공단지에서 육가공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해외 출장 중이던 지난달 25일 직원으로부터 "의성 산불이 안동으로 번졌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잔여 일정을 취소하고 다음 날 급거 귀국했으나 20명 남짓 직원과 함께 성장해 온 회사는 이미 잿더미가 됐다. 해마다 매출이 늘어 안동시 에이스(ACE) 기업으로도 선정됐던 터라 상실감은 더욱 컸다. 그는 "직원들에게는 '위험하니 대피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쌓아온 업력과 거래처를 기반으로 재기하려고 해도 일할 공간조차 없는 게 더 암담했다. 그는 "납품은커녕 공장 운영이 올스톱 돼 경쟁사에 거래처를 뺏기지 않을까 걱정할 지경"이라며 "건물 화재 보험을 들었지만 손해사정인 등 심사를 거치면 사실상 100% 보장받기도 힘들어 현실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하소연했다.
지난달 31일 경북 안동시 남후면 남후농공단지 내 한 공장에서 소방당국이 추가 진화 작업을 벌이면서 일대가 뿌연 연기로 가득 찼다. 안동=김재현 기자 |
경북 산불로 피해를 입은 곳은 농가나 주택뿐만이 아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을 거듭하던 기업도 공장과 시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생존의 기로에 놓였다. 안동에는 풍산·남선·남후농공단지 등 3곳이 있는데, 이 중 남후농공단지 입주 기업의 피해가 막심했다. 1일 경북도와 안동시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남후농공단지 입주기업 43곳 중 14곳이 전소됐고, 9곳이 일부 소실됐다.
전날 찾아간 남후농공단지는 초토화됐다. 화재로 녹아내린 공장이 즐비했고, 건물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일부 건물에서는 불이 되살아나 소방당국이 재차 진화에 나서 매캐한 연기가 뒤덮기도 했다.
"납품 못 해 경쟁사에 거래처 뺏길 판... 생존 기로"
경북 안동시 남후면 남후농공단지 입주기업 피해현황. 그래픽=강준구 기자 |
피해 기업 지원 창구(원스톱 지원센터)를 마련하고 피해 집계 중인 안동시는 고용노동부·경북도 등 8개 기관과 공동으로 이날 오후 2시쯤 남후농공단지 입주기업 간담회를 열어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참석한 입주기업 관계자 50여 명은 "일반 주민들에게는 재난지원금과 이동식 주택, 금전 보상 등 여러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기업에는 '저이자 금융 대출' 외 실질적인 대책이 부족하다"며 "산불 발생부터 기업들은 소외돼 있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부채를 안고 운영해 온 기업에 또 대출을 얹는 것은 매우 부담스럽다는 뜻이다. A씨는 "철거와 복구 비용만 해도 일반 주택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라며 "당국이 좋은 취지로 금융 지원책을 마련했지만, 대출이 아닌 일반 금액 지원이 있다는 사실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업무공간을 마련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고 한다.
"대출 많은데, 또 빚내라고?"
지난달 31일 경북 안동시 남후면 '남후농공단지 산불피해대책위원회' 임시사무실에서 유관기관과 기업인 관계자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안동=김재현 기자 |
기업인들은 또 "신속한 피해 복구가 절실해 상담받으려 전화하면 통화 중이거나 출장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25일 농공단지로 불이 번졌을 때 소방차가 1대밖에 없어 직원들이 직접 불을 껐지만 역부족이었다. 기본 행정에서 왜 기업은 소외돼야 하느냐" 등의 불만을 쏟아냈다.
간담회에 참석한 양금희 경북도 경제부지사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기업 지원책을 국회 특별법에 담겠다고 약속했다. 양 부지사는 "국가가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 지원금 형태로 지급하는 제도가 여태껏 없었다"며 "기업 영업 손실에 관한 지원도 할 수 있게 여야 가리지 않고 만나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또 "금융기관과 협의해 이자를 부담하지 않고도 자금을 대출해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며 "현실적인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31일 경북 안동시 남후면 '남후농공단지 산불피해대책위원회' 임시사무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 기업인이 양금희 경북도 경제부지사를 향해 지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안동=김재현 기자 |
기업인들은 '재기'의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달라고 재차 당부했다. 한 참석자는 "남후농공단지에서 수십 년 동안 삶의 터전을 일궈온 장본인인 기업에 대한 대우가 이것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기업인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안동=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