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무역대표부가(USTR)가 4월 2일(현지시간)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무역장벽 평가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선 미국과의 무역에 방해가 된다고 지적한 한국 법안만 10개가 넘는다. 특히 해당 보고서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산업·소비재 관세의 거의 80%가 사라졌다는 점을 적시하면서 한국에 미칠 영향이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인천신항 항만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헤럴드 DB] |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4월 2일(현지시간)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공개한 ‘무역장벽 평가 보고서’에서는 한국 관련 법안을 12개 나열하며 한국의 ‘비관세 장벽’을 조목조목 짚었다. 해당 보고서는 미국무역대표부가(USTR)이 매년 3월 31일 보고서를 공개하지만 상호관세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공개됐다는 점에서 예년과 무게감이 다르다.
▶총 397쪽 중 한국 7쪽 할애…거론된 법안만 12개=총 397쪽 분량으로 작성된 해당 보고서에서 한국과 관련된 내용은 총 7쪽(248~254페이지) 분량에 걸쳐 언급됐다.
USTR은 한국과 관련 ▷기술 및 위생 ▷공공 조달 ▷지적재산권 ▷서비스업 ▷전자상거래 ▷자본투자 ▷기타(자동차 및 제약) 등 7가지 분야의 무역장벽을 거론하며 미국 기업들의 한국 진출이 방해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급된 법안들은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학물질등록평가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화학제품안전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자원 절약 및 재활용 촉진법(재활용법) ▷유전자변형생물체(LMO)법 ▷클라우드컴퓨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클라우드컴퓨팅법) ▷개인정보보호법 ▷외국법자문사법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방송법 ▷대기환경보전법 등 12개다.
▶원전에 대한 외국인 소유 금지 첫 언급…“한미 FTA로 관세 거의 80% 사라져”=이 보고서는 매년 3월 31일까지 미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하게 돼 있어서 발간 자체가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일 상호관세를 예고하면서 상대국의 대미 관세율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도 감안해 상응하는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어서 각국 상호관세 부과 여부 및 세율 등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올해 보고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상호 교역 물품 대부분에 대한 관세가 철폐된 사실을 적시했다. 특히 한미 FTA에 대해 2012년 3월 15일 한미 FTA 발효와 함께 산업·소비재 관세의 거의 80%가 즉시 사라졌으며, 다른 제품 대부분에 대한 관세도 2021년 1월 1일부로 철폐됐다고 소개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의회 연설에서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높다”고 주장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이번 보고서는 한미가 서로 관세를 대부분 폐지한 상황임을 분명히 소개했다.
이 외로 한국의 수입소고기 30개월 월령제한을 비롯해 네트워크망 사용료, 수입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와 약값 책정 정책 등을 무역장벽으로 지목했다.
보고서는 또 한국의 전력 분야에 대한 투자 제한 조치를 언급하면서 원전에 대한 외국인 소유가 금지돼 있다고 처음 소개했다. 작년 보고서는 수력, 화력, 태양열 등에 대한 소유 제한 문제만 언급했는데, 올해는 원전까지 명시한 것이다.
보고서는 한국의 ‘디지털 무역 장벽’도 상세히 거론했다. 특히 산업기술보호법과 관련, 한국 산업통상자원부가 반도체, 자동차, 로봇공학, 항공 부문 등 국가 안보에 핵심적인 기술에 대해서는 해외로 반출될 가능성을 이유로 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 사용을 불허하고 있다고 올해 처음으로 소개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해외 콘텐츠 공급자가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에게 네트워크 망사용료를 내도록 하는 다수의 법안이 한국 국회에 제출됐다면서 일부 한국의 ISP는 콘텐츠 공급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콘텐츠 제공업자들의 비용 납부는 한국 경쟁자를 이롭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망사용료 부과시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의 독과점이 강화돼 반(反)경쟁적이라고 주장했다.보고서는 한국이 추진 중인 온라인 플랫폼 법안과 관련, “한국 시장에서 활동하는 다수의 미국 대기업과 함께 2개의 한국 기업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이지만, 다수의 다른 주요 한국기업과 다른 국가의 기업은 제외된다”며 문제 삼았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투자 관련 무역장벽으로 ▷지상파 방송에 대한 외국인 출자 금지 ▷케이블·위성방송 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 ▷육류 도매업 등에 대한 투자 제한 등을 거론했다. 또 제약 및 의료 기기 산업의 경우 한국의 가격 책정 및 변제 정책에 투명성이 부족하고 정부가 제안한 정책 변경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이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농업·생명공학 관련 한국의 규제 시스템은 미국 농산품에 도전”이라며 새로운 바이오기술 제품에 대한 허가 과정이 과도한 검토와 데이터 요구로 인해 지연된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의 화학물질 관리 관련 법률과 시행령에서 규정 집행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부족하고, 사업상 기밀 정보에 대한 보호도 부족하다면서 이에 대해 미국 수출업자들이 우려를 표해왔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상호관세 세율 근거로 활용될 듯=이처럼 보고서에 망라된 비관세 장벽들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국별로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한국에 책정할 세율의 설명 근거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보고서가 부과되는 관세율에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상호관세 발표가 트럼프발 무역전쟁의 ‘끝’이 아닌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발표 전 협상의 여지는 없으나 발표 이후 각국과 협상할 여지가 있음을 시사해왔다. 그는 지난 28일,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상호 관세 관련 협상 문제에 대해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에 열려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상호관세 발표 전에 협상이 가능한지를 묻는 말에는 “아니다. 아마도 그 뒤에”라고 덧붙였다. 김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