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과 스트라이커 장갑차 |
(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2006년 1월 20일 새벽 미국발 긴급뉴스가 타전됐다.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는 소식이었다.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필요성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 이행에 있어서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했다. 당시 합의에는 모호한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 양국은 더는 논의를 진전시키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론이 또다시 힘을 얻고 있다. 역시 재조정의 핵심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주한미군을 포함한 전 세계 주둔 미군이 특정 지역에 고정된 '붙박이 군대'가 아니라 세계 어디든 비상사태 발생 시 즉각 투입할 수 있는 기동성과 신속성을 갖춘 기동타격군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이런 방향으로 글로벌 군사전략 재편을 추진해왔다. 이와 관련해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한 미 국방부의 '임시 국가방위 전략 지침'도 눈길을 끈다. 최근 배포된 이 지침은 '중국의 대만침공 저지와 미 본토 방어'를 최우선 목표로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만해협 위기 대응으로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란 해석을 낳는다.
최근 미국에서는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 필요성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이 자주 나온다. 이달 26일 미 상원 외교위 공청회에서 스탠퍼드대 산하 '프리먼 스포글리 연구소'의 오리아나 스카일라 마스트로 연구원은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동의해야 한다"면서 "이는 미국이 한반도에 있는 미군을 한반도 밖의 비상 상황, 즉 중국과 관련된 상황에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도 27일 온라인 대담에서 "엘브리지 콜비가 국방부 정책 담당 차관이 될 것인데, 그들(콜비와 국방부 당국자들)은 거의 확실히 한국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압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콜비 차관 지명자는 대표적인 주한미군 역할 확대론자로 꼽힌다.
주한미군의 역할 재조정은 한반도 안보의 또 다른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 작전 범위가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는 물론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되면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한국이 국제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대만해협 유사시 주한미군이 동원될 경우 한국 내 미군 기지가 중국의 공격 대상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국방부 대변인은 31일 주한미군 역할 재편 문제와 관련한 질문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는 것이 주한미군의 가장 큰 역할이고 그것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우리의 바람대로 되기를 바란다.
bo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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