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너무 역동적인 것은 아닐까, 상대의 몫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다 좌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미덥지 못하더라도 상대를 믿고 기다려줄 수는 없는 것일까. 특히 우리 정치를 보면 그렇다. 상대방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은 지는 오래됐다. 이제는 회의 석상에서 얼굴 붉히며 삿대질하면서 싸우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포퓰리즘 정치의 일상화, 갈등의 극단화로 가고 있다.
사법의 정치화도 일상이 됐다. 걸핏하면 고소·고발을 한다. 판결에 대해 법원을 비난한다.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경의를 표한다"고 칭찬하고,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비상식적 판결"이라고 공격한다. 판사를 이념과 지역으로 분류해 색깔도 칠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판결에 대한 여야 반응이 대표적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개인과 기관의 권위가 해체되면서 갈가리 분열하고 있다. 개인은 개인대로, 기관은 기관대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면서 '우리가 아닌 우리 편'을 챙기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의 위기이고, 국가의 위기이다. '권력의 원리'(줄리 바틸라나·티치아나 카시아로 지음, 로크미디어)를 읽다 보니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의 말이 콕 박혔다. "대통령으로서 나의 힘은 공유하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힘이 분산돼 있다. 그래서 힘은 곧 타협이다."
일각에서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하는 4월18일 이전까지 탄핵심판 선고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거론한다. 그런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헌법재판소는 존재 이유를 의심받게 될 것이고 우리 사회는 아노미 상태로 갈 것이다. 재판관들은 광장의 열기를 넘어 오직 헌법과 국민만 바라보고 18일 이전에 선고해야 한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재판관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용기다.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kumk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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