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드래곤 8년 만의 솔로 콘서트 ‘위버멘시’ [갤럭시코퍼레이션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권다정, 권다정, 고마워, 고마워!”
8년 만의 귀환이다. ‘컴백’을 한 것도, 솔로 콘서트를 여는 것도 모두 8년 만이었다. 88년생 지드래곤(본명 권지용)은 “8의 저주라 하기엔…8이 너무 많다. 8년 만의 콘서트에, 88년생. 그게 제 팔자, 남들과 다른 팔자”라며 “8로(FLLOW) 8로 미 해도, 팔로팔로 미 해서 88년생으로 감사하다”는 그에게 팬들은 그저 고마워했다.
지드래곤이 돌아왔다. 이제는 K-팝 그룹을 ‘가수’가 아닌 ‘아티스트’로 부르는 것이 일반화됐고, 그 누구보다 ‘아티스트’로의 정체성을 가졌지만, 스스로는 자신을 늘 ‘가수 지드래곤’이라고 말하는 K-팝 제왕이자 K-팝 사상 저무후무한 아티스트다. 그의 몇 줄의 인사엔 오랜만의 컴백과 최근 우리나라를 둘러싼 여러 일들을 염두한 마음이 모두 녹아있었다. 최근 경상도를 중심으로 확산한 산불과 계엄 이후 탄핵 정국을 거치고 있는 과정을 염두한 듯 첫 인사를 건네자, 오래 기다린 팬들의 함성은 더 커졌다.
지드래곤 8년 만의 솔로 콘서트 ‘위버멘시’ [갤럭시코퍼레이션 제공] |
지드래곤은 29~30일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콘서트 ‘위버멘쉬’(Übermensch)를 통해 월드투어의 시작을 알렸다. 티켓 오픈과 동시에 6만여 석이 순식간에 팔려나간 공연은 영하로 뚝 떨어진 날씨에도 2시간 40여분간 이어졌다.
8년의 기다림을 끝맺는 날이었지만, 만남은 쉽사리 성사되지 않았다. 영하의 날씨에 70분 가량 지연된 콘서트는 팬들의 마음을 애타게 하기에 충분했다. 첫날 공연은 당초 6시 30분 시작 예정이었으나 이날 오전부터 이어진 강풍, 돌풍 등으로 인한 무대 보강 작업으로 주최 측은 오후 2시께 공연 시작 시간을 30분 연기한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좋지 않았다. 7시에 시작돼야 할 공연은 또 한 차례 지연, 오프닝 영상 등장까지 총 73분 늦어진 오후 7시 43분이 돼야 콘서트는 시작됐다.
지드래곤 8년 만의 솔로 콘서트 ‘위버멘시’ [갤럭시코퍼레이션 제공] |
공연은 지난 2월 25일 발매한 지드래곤의 세 번째 정규 앨범 ‘위버멘시’의 세계관을 곳곳에 옮겼다. 음반의 메시지를 담은 ‘초인’ 콘셉트를 옮긴 영상이 마무리되자 지드래곤은 붉은 장미꽃을 피운 재킷에 왕관을 쓰고 등장했다. 음반의 선공개곡이었던 ‘파워’(POWER)로 문이 열리자 이내 함성도 쏟아졌다. 명실상부 ‘무대 장인’의 여유와 슈퍼스타로의 면모는 8년의 공백을 무색케 했다.
그간 빅뱅 태양 콘서트, ‘마마’(MAMA, 엠넷아시안뮤직어워즈) 등을 통해 이른바 ‘쓰리뱅’(빅뱅 완전체)의 무대를 선보였기에 세 사람이 함께 부른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에서도 완전체 모습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도 컸다. 하지만 공연은 의외의 방향으로 흘렀다. 태양과 대성은 무대의 영상을 통해 각자의 파트를 소화하며 지드래곤과 어우러졌다. 실물은 아니었지만 마치 세 사람이 함께 꾸미는 듯한 무대였다.
다시 돌아온 지드래곤의 공연은 최첨단의 기술력과 섬세한 수작업이 공존한 무대였다. 트렌드세터 지드래곤의 무대 의상조차 볼거리였다. 만개한 장미꽃 수백 송이가 장인의 손길로 한 땀 한 땀 지드래곤의 상반신을 치장하는가 하면 검은 슈트에 새하얀 날개를 달아 하늘로 날아오르는 초인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지드래곤 8년 만의 솔로 콘서트 ‘위버멘시’ [갤럭시코퍼레이션 제공]Evoto |
그런가 하면 공연은 니체의 ‘초인’ 개념을 담아낸 신보 ‘위버멘쉬’ 세계관을 3단계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했다. 위버멘쉬의 로고(Ü)가 무대와 에어벌룬 로봇으로 공연장 곳곳을 날아다녔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각종 테크 기술을 통해 팬들과 함께 하는 무대를 꾸몄고, 디에이징(AI와 데이터 추출 기술을 접목해 젊은 시절의 모습을 재현하는 기술) 기법으로 꼬마 룰라 시절의 지드래곤이 ‘소년이여’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까만 밤하늘엔 드론으로 지드래곤의 ‘하트 브레이커’ 음반 이미지에서 시작해 현재의 얼굴로 바뀌는 모습을 연출했다.
영하 2도의 강추위와 오랜 기다림을 달래준 것은 지드래곤의 무대였다. 그는 “지금까진 쉬는 시간 없이 음악을 하면서 매년 컴백을 했는데 이제 와서 ‘컴백’이라는 것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처음 느끼게 됐다”며 “진짜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게 있어 많이 고민했고, 많이 그리워하며 만나기를 기다렸다. 오늘은 모두에게 자랑할 수 있게 제가 제일 빛이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몸풀기를 시작한 지드래곤은 라이브 밴드와 첨단의 무대 기법을 장착한 무대에서 공연을 이어갔다. ‘더 리더스’(The Leaders) 무대에선 화이트 슈트를 입은 투애니원 씨엘(CL)이 등장, 지드래곤과 완벽한 합을 맞춰 관객들의 엄청난 함성이 쏟아졌다.
지드래곤 8년 만의 솔로 콘서트 ‘위버멘시’ [갤럭시코퍼레이션 제공] |
무대 곳곳을 누비며 열창할 때마다 지드래곤은 용처럼 거센 입김을 뱉었고 코끝이 빨개졌다. 내리 다섯 곡을 마친 뒤 지드래곤은 “달라진 시스템인가요? 요즘 가수들은 물을 안 마시나요?”라며 “물을 찾아라”라며 목마름을 호소하자, 객석에선 “물 마셔, 물 마셔”라는 관객들의 대답이 쏟아졌다. 그의 이름 ‘권지용’을 연호하는 소리에 권지용은 “알았어~”라고 답하며 팬들을 조련했다.
그의 첫 미니앨범에 수록된 ‘크레용’과 ‘그 XX’를 비롯해 나비가 날아오른 ‘버터플라이’에 이어 ‘투데이’를 부를 땐 ‘위버멘시’의 ‘유’ 자를 형상화,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있는 동상이 무대에 세워졌다. 그 사이에 앉아 노래하자 그것 자체로 한 편의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졌다. 이후 더 거대해져 완전히 초인이 된 두개의 동상이 T 자형 무대에 세워졌다.
첨단의 무대와 어우러진 구조물의 등장은 이 공연에서 지드래곤이 상징적으로 의도한 장치처럼 보였다. 그는 “니체에 철학이 나와서 어려워 보이는데, 있어 보이려 한 것이고 별것 아니다. 사실 그냥 열심히 계속하자는 뜻”이라고 장난스럽게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거대한 크기의 위버멘시 동상엔 ‘하트 브레이커’ 시절의 지드래곤과 현재의 지드래곤의 모습을 나란히 세워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지드래곤 8년 만의 솔로 콘서트 ‘위버멘시’ [갤럭시코퍼레이션 제공] |
지드래곤의 이번 공연은 과거의 그와 그 시간에서부터 진화해온 지금 이순간의 그를 관통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의 저는 미래진행형”이라며 “왼쪽(현재의 모습) (동상이) 더 맑다”며 웃었다.
늦게 시작한 공연으로 인해 지드래곤은 팬들의 귀가시간도 걱정했다. 관객들에게 지금 “몇 시”냐고 묻자 팬들은 작정한듯 여덟시라고 답하는가 하면, “차가 몇 시에 끊기냐”고 물으면 “괜찮다”며 앙탈을 부렸다.
공연에선 ‘투 배드’(TOO BAD)를 비롯한 새 앨범 ‘위버멘쉬’ 수록곡과 ‘니가 뭔데’, ‘원 오브 어 카인드’(ONE OF A KIND), ‘개소리’ 등 기존 솔로곡을 곳곳에 배치했다. ‘하트브레이커’(Heartbreaker) 무대에선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화제를 모은 비트박서 윙이 등장했다. 두 사람의 호흡도 볼만했다. 윙이 입으로 베이스 소리를 내자 지드래곤 역시 즉석 비트박스를 얹으며 호흡을 맞췄다.
지드래곤 8년 만의 솔로 콘서트 ‘위버멘시’ [갤럭시코퍼레이션 제공]Evoto |
두 번째 정규 앨범 ‘쿠데타’ 타이틀곡 ‘삐딱하게’를 부를 땐 무대 아래로 내려가 관객들을 가까이에서 만났다. 일찌감치 ‘남성팬들의 떼창’ 곡으로도 화제였던 ‘삐딱하게’를 부를 땐 남성팬에게 마이크를 양보하자 가사 한 줄 틀리지 않고 신나게 후렴구를 열창해 웃음을 자아냈다.
지드래곤이 무대 아래에서 팬들과 만날 땐 위험천만한 상황도 연출됐다. 플로워석 관객들이 그를 보기 위해 달려갔다. 심지어 계단에 서서 지드래곤을 향해 손을 뻗고 모두가 지근거리에서 얼굴을 담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관객들이 지드래곤이 기대고 선 난관까지 휘청일 정도로 밀어붙였고, 관객과 관객간의 사이도 지나치게 촘촘해졌다. 많은 콘서트에서 가수들이 객석 가까이 가지만 이토록 혼란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지드래곤 8년 만의 솔로 콘서트 ‘위버멘시’ [갤럭시코퍼레이션 제공]Evoto |
지드래곤은 팬들을 향한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칠 거 같은데 뒤로 뒤로, 조금만 뒤로 뒤로”라고 말했고, 무대로 다시 올라와선 “안 다쳤어요?”라고 물으며 관객들을 진정시켰다.
‘드라마’(DRAMA)를 마지막 곡으로 부른 뒤엔 앙앙콜(앙코르 후 또 앙코르)의 시간이 찾아왔다. ‘소년이여’, 1년 정거장‘부터 ’디스 러브‘(THIS LOVE)에 이르기까지 2시간 40여분간 영하의 날씨를 녹인 공연이었다.
그는 “함께 해서 고맙고 행복했다. 시간이 지나도 좋았다고 기억할 수 있는 날이었다”며 “오늘 어땠을까? ’낫 배드?‘ 그래도 열심히는 했다. 처음이고, 오랜만이라 돌발상황도 있지만 좋은 추억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피켓팅’에 지친 팬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도 전했다. 지드래곤은 “대신 (공연) 많이 하겠다”며 “지금은 삼월이니까 시간 언제돼?”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월드투어를 마치고 늦지 않게 다시 꽃을 피우려 돌아오겠다는 약속이 나오자 팬들은 “권다정”을 연호했다. 빅뱅 완전체 무대도 예고했다. 내년이면 20주년을 맞는 빅뱅 완전체의 컴백이다. 지드래곤은 “내년 저희 형제들이 스무살을 맞는다. 아직 어리다”며 “같이하기엔 ‘미성년자’라 조금 그렇고, 스무살이 되면 성인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드래곤 8년 만의 솔로 콘서트 ‘위버멘시’ [갤럭시코퍼레이션 제공] |
오랜만의 교감은 데이지 꽃으로 피어난 날이었다. 지드래곤이 직접 디자인한 그의 상징인 ‘데이지’ 응원봉 3만개가 고양종합운동장에 활짝 폈다. 그는 “이곳은 처음 와보는데 이렇게 예쁜 곳인지 몰랐다. 꽃이 정말 예쁘게 피었다”며 “제가 다시 이 뷰를 볼 수 있을까, 지난 몇 년 동안 그려본 적도 없었고 욕심 같다는 생각도 많았다. 오늘 꽃밭이 참…꽃이 좋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늦어서 죄송하고 추워서 죄송하고, 또 감사드린다”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지드래곤이기에 팬들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사상 초유의 지연 공연이었지만, 정작 현장에서 만난 관객들은 그저 고맙고 행복한 마음이었다. 지드래곤의 17년차 팬이라는 김서현(28)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오빠의 팬이었는데 콘서트는 이번에 처음 와봤다”며 “내돈내산으로 음반과 굿즈를 사고 콘서트를 보는게 소원이었는데 이렇게 올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오래 기다렸지만 그 긴 시간을 공연으로 만회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말했다. 데뷔 20주년을 앞둔 그룹임에도 현장엔 중고등학생 VIP(빅뱅 팬덤)도 적지 않았다. 중학생 이채은(15) 양은 “데뷔 때부터 함께 하진 못했지만 어릴 때부터 빅뱅과 지드래곤 오빠를 좋아했다”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늘 최고이고 늘 트렌드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6만 관객과 만난 지드래곤은 오는 5월 일본 도쿄돔을 시작으로 필리핀 불라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홍콩 등 7개국 8개 도시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