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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사라진 가족…맨손으로 잔해 파내고 사람 끄집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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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강진 나흘째
경향신문

무너진 일상 한 승려가 30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지진으로 붕괴된 사원 근처를 걸어가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태국 방콕의 지진 붕괴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다. AP·AFP연합뉴스


10㎞ 얕은 진원 깊이 주원인
컨트롤타워 없어 피해 커져
의약품 부족·병원 포화상태

군정은 반군에 공습 계속
‘인도 지원 무기화’ 우려도

지난 28일(현지시간) 미얀마를 강타한 규모 7.7 강진으로 사망자가 급증했으나 구조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내전 상태인 미얀마에서 군사정부 차원의 재난 대응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다 기반 시설 파괴로 접근조차 어려운 탓에 장비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구조 현장에선 사투를 벌이고 있다.

30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진앙과 가까워 큰 피해를 본 미얀마 제2 도시 만달레이의 자원봉사 구조대원들은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힌 수백명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들은 최소한의 보호 장비만 착용한 채 만달레이의 한 12층 아파트 잔해 속에서 지진 발생 30시간 만에 한 생존자를 구해냈다. 하지만 여전히 90여명이 매몰돼 있다고 국제적십자사는 전했다.

한 구조대원은 BBC에 “우리는 맨손으로 (잔해를) 파내면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시신을 수습하고 잔해 아래 갇힌 사람을 구해내려면 이것으론 부족하다”며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울부짖는데, 정말 희망이 없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원은 밤이 돼도 집에 들어가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길바닥을 서성이고 있다며 “눈앞에서 가족, 친구, 친인척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공포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만달레이 종합병원은 이미 포화상태로 다친 사람들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주민은 “11세 조카 한 명이 발가락 세 개를 잃었고, 다른 지인은 머리를 다치고 다리가 부러졌지만 인근 병원 모두 꽉 찼다는 이유로 이들을 돌려보냈다”고 CNN에 말했다.

구조 작업이 한창인 미얀마 수도 네피도 역시 통신이 끊기고 도로와 다리 등이 파괴돼 구조대나 장비가 현장에 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얀마 군사정권은 이례적으로 국제사회에 신속하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네피도와 만달레이 국제공항도 폐쇄돼 인도적 지원이 녹록지 않은 상태다. 유엔 인도주의조정국(OCHA)은 혈액 주머니, 마취제, 필수 의약품과 의료 장비 등이 대거 부족한 상태라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네피도와 만달레이의 병원으로 외상 치료 키트와 다목적 텐트를 포함한 의약품 3t을 급히 보냈다.

군정 통제를 받지 않는 일부 외곽 지역에는 아예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톰 앤드루스 유엔 특별조사위원은 군부 행태에 대해 “그들은 인도적 지원을 무기화해 자신들이 장악한 곳에만 보낸다. 이번에도 같은 양상이 반복될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현재 군부가 영향력을 미치는 영역은 국토의 4분의 1도 되지 않고, 반군이 약 42%를 장악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BBC는 전했다.

지진 발생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는 와중에도 군정이 반군을 향한 공습을 이어가면서 7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반군은 지진 피해를 본 곳에서 30일부터 2주간 방어를 위한 반격을 제외한 모든 공격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으나 군부는 공습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번 지진 피해가 유독 큰 원인으로는 약 10㎞ 수준의 얕은 진원 깊이와 지질학적 구조 등이 꼽힌다. 영국 지질연구소(BGS) 지진학자인 로저 머슨은 진원 깊이가 얕아 충격파가 완화되지 않은 채 건물들이 강력한 진동을 그대로 받았을 수 있다고 짚었다. 지진학자들은 또 두 개의 지각판 사이에 있는 미얀마는 지질학적으로 가장 활동적인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데다 길이가 1200㎞에 이르는 대규모 ‘사가잉 단층’이 국토를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어 지진이 발생하면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4년 넘게 내전을 겪으며 재난에 대비할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미얀마에 지진까지 덮치면서 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얀마의 주요 인프라와 주거 건물에는 내진 설계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CNN은 “피해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지진이 난 타이밍이 이보다 나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는 미얀마를 돕기 위한 구호활동 지원에 나섰다. 미얀마 군정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과 러시아는 재빠르게 응급 의료진 등을 급파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얀마 군정 수장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고 피해 지역 주민들이 재해를 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위로 전문을 보냈다.

미얀마 군정과 대립해오던 미국 등 서방 국가들도 인도적 차원에서 손을 내밀고 있다.

해외원조 업무를 담당하는 미국 국제개발처(USAID)를 사실상 폐쇄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이날 “우리는 도울 것이며 이미 미얀마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유엔은 500만달러(약 73억원) 규모의 초기 긴급 지원을 약속했다. 한국 외교부는 미얀마에 200만달러(약 29억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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