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 산불 현장에 닷새 연속 투입된 소방관 박모(30대)씨는 30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대형 산불 온도는 최대 1000~1500도에 달한다”면서 “우리 동네라는 생각으로 불길을 잡았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박씨를 비롯한 소방대원들은 무거운 호스를 등에 업고 산을 여러 차례 오르락내리락했다. 이들은 불에 그슬리고 강풍에 손바닥이 터졌지만 끝까지 호스를 놓지 않았다고 했다.
모두가 영웅입니다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 태부족인 인력·장비라는 악조건에서도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한 작은 영웅들의 묵묵한 활약이 213시간 만의 동시다발 대형산불 진화를 이끌어냈다. 왼쪽 사진부터 29일 경북 안동시 고하리 부근 산에서 잔불 진화작업 중인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 경북 의성 산불 이재민 임시대피소에서 대민의료지원을 하고 있는 육군 50보병사단 장병, 30일 제주시 전농로 왕벚꽃축제 참가자가 영남권 산불 특별모금함에 성금을 넣는 모습, 29일 경기 김포시 한 장례식장에서 의성 산불 진화 중 헬기 추락으로 순직한 박현우 기장의 발인식이다. 안동·의성·제주·김포=뉴시스·뉴스1·연합뉴스 |
역대 최악으로 기록된 경북 산불 현장의 최전선에서 밤낮없이 불길과 싸운 영웅들이 있다. 산불진화대와 소방관, 경찰, 공무원, 군인,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구미시 옥성면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이승민(47)씨는 농약살포기로 물을 뿌려 민가 피해를 줄이는 데 힘을 보탰다. 화마가 기승을 부린 지난 26일 의성군 안사면으로 향한 이씨는 최대 4000ℓ의 액체를 담을 수 있는 데다 100m 거리까지 분사할 수 있는 농약살포기에 물을 가득 채워 민가와 창고를 뿌려댔다. 그는 “잔불이 완전히 정리될 때까지 언제든 현장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악의 상황은 넘겼지만 ‘잔불과의 전쟁’은 당분간 이어진다. 산림 당국은 300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잔불 정리를 계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잔불 정리에 동원된 공무원과 의용소방대원은 주말까지 반납하고 있다. 공무원 김모(30대)씨는 “의성 산불이 발생한 후 단 하루만 제외하고 잔불 정리를 하고 있다”면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불이 피어날 수 있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9일 오후 대한약사회와 경북도약사회가 영덕 산불 피해 이재민 대피소인 영덕읍국민체육센터 앞에서 재난긴급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이재민들에게 호흡기, 근육통 등에 사용하는 약과 파스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뉴스1 |
지난 28일 경북 의성군 의성읍 의성종합운동장에서 근무교대를 한 소방대원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재민의 상처를 보듬기 위한 온정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고향을 떠난 출향민부터 일반 시민까지 피해 현장에 너나 할 것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도에 따르면 이날까지 의성을 포함한 안동·영양·청송·영덕에 힘을 보탠 자원봉사자는 9일째 모두 6118명이다. 전국의 기업, 시민단체 등은 자발적으로 생필품과 먹거리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특히 개인의 제안으로 옷가지와 생필품 등을 모아 피해 지역에 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전국 지자체도 산불 피해자를 돕고자 팔을 걷었다. 경기도는 재해구호기금 35억원을 전달하기로 했다. 광주시는 경북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 산불 피해를 본 경남, 울산 등에 재해구호기금 5000만∼1억원을 각각 전달했다.
안동=배소영 기자, 이병훈 기자, 전국종합 sos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