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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우산 사라진 유럽… 방위비 늘리고 '안보 독립' 가속도[글로벌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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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포함 31개국 방위비 증액 다짐
EU 집행위 '5년 내 재무장' 청사진 공개
4년간 방위비 지출 8000억유로로 더 늘려
獨 기독민주당 국방에 1조유로 지출 약속
폴란드 핵무기 개발 가능성 시사하기도
방위산업 활성화 바탕 경제 성장률 제고
방위비 1%p 올리면 생산성 0.25% 올라
감원 된 車 근로자 방산업계로 재배치 등
방산물자 생산 늘어나면 제조업 '활력'
양자컴퓨팅·로봇공학 산업도 촉진 기대


파이낸셜뉴스

최근 들어 유럽에 뚜렷한 변화가 보이고 있다.

4년째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들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유럽 국가들은 종전 이후 안보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방위비 증액을 포함해 소홀했던 군사력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은 유럽 대륙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냉전이 끝난 후 이어져온 동서간 데탕트(긴장완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멈추고 전쟁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냉전 이후 유럽 국가들은 방위비 지출을 대폭 줄이고 미국으로부터 핵무기를 포함해 안보 우산을 제공 받았다.

2차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유럽의 안보를 뒤받쳐주던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앞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 더 우선을 두는 큰 정책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평화 협정 체결에 성공 할 경우 러시아를 가까이 두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심각하게 대비하기 시작했다.

■ 美, 유럽보다 印·태평양 안보에 더 집중 예고

지난달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유럽 국가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한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앞으로 미 남부 국경 안보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데 더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해 미국의 유럽 안보 정책에 큰 변화가 있을 것임을 유럽 동맹국들에 알렸다.

국방장관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이었던 이 자리에서 헤그세스는 앞으로 유럽의 방위는 "유럽 동맹국들이 앞에서 주도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이 안보 관련 재정적 기여를 확대할 것도 촉구했으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며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긴 2014년 이전의 영토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란 점도 언급했다.

헤그세스는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과 일본, 호주, 필리핀 등 역내 동맹국과 협력 지속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인도·태평양 지역 억지력 효과는 미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럽 주재 미국 외교관들이 나토의 상호방위조약 5조항에 따른 집단 방위를 미국이 계속 이행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다시 돌아오면서 유럽 주둔 미군이나 군 자산을 감축하고 나토 동맹국으로써의 임무를 다하지 않을까 유럽은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해 유럽 국가들이 방위비 증액과 군 전력 증강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하고 있다.

■EU 포함 31개국 방위비 지출 증액 다짐

그동안 유럽 안보에 있어 미국의 비중은 절대적으로 미 전체 국방 예산은 나머지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지출을 합친 것보다 많다.

런던 국제전략연구센터(IISS)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연합(EU) 전체 국방예산이 4570억달러(약 672조원)로 9680억달러(약 1423조원)인 미국에 크게 못미쳤을뿐만 아니라 4620억달러(약 678조원)인 러시아 보다도 작았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EU 외교안보 고위대표 키야 칼라스는 지난 19일(현지시간) EU가 지난 10년동안 방위의 가치를 높게 두지 않았다고 시인하며 "세계는 1945년 이후 볼 수 없었던 격변의 순간을 겪고 있다. 이제는 행동에 나설 때"라고 말했다.

이달 들어 유럽이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주목받고 있는 것이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과 '준비 2030'이다.

'의지의 연합'은 유럽의 군사 강국인 프랑스와 영국이 제안한 것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미국 없이도 유럽의 방위력 증강을 위해 방위비 지출을 늘리기로 한 EU와 유럽의 비회원국, 캐나다를 포함해 31개국을 가리킨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유럽이 방위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유럽이 방위를 분담해 맡으면서 전후 우크라이나 방어에 더 책임질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의지의 연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휴전 이후 러시아의 재침공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 임무 성격을 띤 군대를 파병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나토에서 두번째로 큰 육군을 보유하고 있는 튀르키예는 필요하다면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에 파병할 수 있다고 밝혔으며 러시아 접경국인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핀란드도 참여 의사를 나타냈다. 호주까지도 파병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지출이 4.7%로 비교적 높은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와 친러 국가인 벨라루스,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자국의 안보에 더 주력하고 있다. 지난 2월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우크라이나 영토에 폴란드군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은 지난 26일 해임된 올라프 숄츠 전 총리가 그동안 불분명한 입장을 보여왔으나 지난 27일 보리스 피토리우스 국방장관이 파병 동참 가능성을 열어뒀다.

차기 독일 총리가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교민주연합당 대표는 독일이 유럽의 자유와 평화 수호를 하는데 중대한 기여를 할 것이라며 앞으로 전임자인 숄츠와 달리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현 상황에서 자국 군대를 보낼 수 없다고 말했으며 러시아에 우호적인 슬로바키아와 헝가리 정부의 파병 가능성은 없다.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를 자극하는 것과 자국의 방위력 약화 우려로 파병을 꺼리며 대신 군수 지원만 할 수 있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유럽 재무장을 위한 '준비 2030'

지난 4일 EU집행위원회가 공개한 '준비 2030'은 앞으로 EU의 방위비 지출을 4년 동안 8000억유로(약 1172조원)로 더 늘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초 '유럽 재무장'이었던 명칭이 일부 국가들의 반발로 '준비 2030'로 바뀐 것으로 2030년을 러시아가 EU나 나토 회원국에 대한 공격에 필요한 능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로 잡았다.

메르츠 독일 기독민주당 대표는 독일이 방위비와 군 관련 인프라 프로젝트를 합쳐 1조유로(약 1592조원) 지출을 약속하면서 '독일이 돌아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준비 2030'은 주로 탄약과 무기 구매에 치중하는 것이 내용이 지적되고 있으며 유럽에서 미군의 역할 축소에 대비해 대륙의 나토 국가들과 EU 회원국들은 징집을 늘려야 하는 것이 과제다.

런던 IISS의 연구에 따르면 전투가 가능한 유럽의 대대급 부대 규모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를 무력으로 합병한 2014년에 비해 줄어든 상태다.

유럽의 Z세대가 군복무나 전쟁 발생시 총들고 싸우겠다는 의지가 약한 것이 문제다.

벨기에 브뤼셀 소재 브뤼겔 정책 연구소는 미국 없이 유럽이 러시아의 침공을 막으려면 수 천억달러와 함께 군 병력 30만명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앞으로 유럽 안보에서 미국이 빠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공동으로 대처해야 하지만 각국이 독자적으로 국방을 하겠다는 고집을 고쳐야 한다.

채권 발행과 규제 완화를 통해 8000억유로를 확보해야 하는 '준비2030'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이 같은 EU의 방위비 증가 노력이 미국이 유럽 안보에서 손을 더 떼게하는 구실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불안한 정치와 경제, 러시아에 우호적인 극우 정당의 부상도 EU의 재무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유럽은 재래식 군사력뿐만 아니라 핵전력 강화도 과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에 계속 핵우산을 제공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유럽의 우방국들은 계속 의존을 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

핵탄두 약 300개를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EU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을 제안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지배를 받기도 했던 폴란드는 미국에 핵무기 배치를 요청했을 뿐만 아니라 자체 핵무기 개발 가능성도 시사했다.

글로벌 공공정책 연구소 소장 토르스텐 베너는 모든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독일도 핵무장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유럽이 자체 핵우산 제공을 검토하는 것을 포함해 군사력 증강 노력이 자칫 미국의 핵무기 철수 등 군사적 디커플링을 자극시킬 수 있어 신중하게 해야한다.

또 러시아가 에스토니아나 리투아니아에 대한 재래식 공격을 감행하면 프랑스가 핵무기로 대응할지도 미지수라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럽대학연구소 로버트 슈먼센터 소장 에릭 존스는 비관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렇지만 이 같은 불확실한 핵우산 적용 범위만으로도 러시아를 억제하고 나토의 핵정책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예상되고 있다.

■방산 산업 제조업 활기 효과 기대

유럽은 방산물자를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구매해왔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 회원국들이 1년에 생산할 수 있는 포탄을 러시아는 3개월이면 제조하고 있다며 "우리는 방위산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은 하루에만 포탄 약 7000발을 사용하고 있으나 프랑스의 지난해 생산 목표는 총10만발에 그쳤다.

유럽의 국방 강화를 위한 노력은 제조업을 포함해 경제에도 더 활력을 불어줄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아돌포 우르소 이탈리아 산업장관은 지난 23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진 인터뷰에서 독일의 방위비 예산 1조유로(약 1582조원) 지출 약속이 역사적인 전환점이라고 환영하면서 이탈리아 북부지역의 제조업체들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독일은 이탈리아의 최대 수출 시장으로 독일 시장 부진에 따른 수출이 줄어들면서 이탈리아의 GDP는 지난 2023년과 2024년에 각각 0.2%p 축소됐다.

또 대대적인 방위력 증강은 혁신을 일으키고 새로운 수출원동력이 될 수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준비 2030'을 통해 유럽의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팅, 통신, 위성망, 자율주행차, 로봇공학 같은 중요한 산업도 촉진시킬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방위비 증액으로 기술을 갖고 있는 유휴 인력과 자본도 활용할 수 있다. 감원된 자동차 근로자가 많은 독일은 이들을 방산업계가 고용할 수 있다.

유럽은 1960년대 이후 방위비 지출 규모를 3분의 2를 줄이면서 경제성장률이 절반 수준으로 내려갔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 경제학 부교수 이선 일제츠키는 유럽이 GDP 대비 방위비 1%p만 늘려도 장기 생산성이 0.25% 상승한다고 설명했다.

유럽이 GDP 대비 방위비를 2%에서 3.5%로 늘릴 경우 경제 생산성이 0.9~1.5% 더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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