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긴급현안 관련 경제관계장관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News1 김성진 기자 |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여야 합의'를 강조하며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에 신중한 입장을 취해 온 정부가 30일 10조 원 규모의 추경안을 먼저 제시하고, 이를 '필수 추경'이라 명명했다. 그동안 국회가 먼저 합의해 가이드라인을 주면 추경을 검토하겠다던 기존의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 변화에는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는 산불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미국발 통상전쟁과 민생물가 등도 고려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는 당장 여야 간 이견이 없고 예산 투입이 시급한 '필수 사업'에 대한 지원을 담은 추경안을 편성한 뒤 여야 동의를 거쳐 4월 중 최대한 빨리 국회 통과를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안 편성부터 국회 심사까지는 통상 1~2개월 안팎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를 3주 내외로 단축하겠다는 목표다. 정부가 이번 추경을 '필수 추경'이라 명명한 이유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0일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가 발생한 산불과 미국 신정부의 관세 부과로 인한 통상리스크 현실화 등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 10조 원 규모의 필수 추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현안 관련 경제관계장관간담회를 주재하고 "민·관이 산불 피해 복구, 통상 리스크 등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는 만큼, 재정 측면에서도 기존 가용재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넘어 신속한 추가 재정투입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 부총리는 "최근 산불로 약 4만 8000ha(헥타르)에 이르는 산림 피해와 75명의 사상자 등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 지역민들의 조속한 일상 복귀를 위한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과 지원이 긴요한 상황"이라면서 "정부는 시급한 현안 과제 해결에 신속하게 집행 가능한 사업만을 포함한 10조원 규모의 필수 추경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필수 추경'이라 명명한 정부의 설명대로 이번 추경은 △재난·재해 대응 △통상 및 AI 경쟁력 강화 △민생 지원 등 여야 간 이견이 없는 3대 분야에 집중된다.
더불어민주당이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각각 제안한 '30조 원', '15조~20조 원' 규모의 추경과는 규모의 차이가 있다. 정부는 '필수 추경'이라는 표현 그대로 여야 간 이견이 없고, 현 상황에서 지원이 시급하고 필수적인 사업만 추경안에 담겠다는 입장이다.
산불 대응이 대표적이다. 여야가 최근 산불 대응과 관련한 예비비를 두고 공방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부는 산불 대응 예산을 이번 추경에 우선 담기로 했다. 추가적인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실화된 글로벌 통상 문제, AI(인공지능) 경쟁력 제고를 위한 사업도 추경안에 담는다. 이는 모두 여야 간 다툼이 없는 사업들이다. 또 민생 안정을 위해 서민·소상공인을 지원하고 서민·취약계층의 소비 여력을 확충하는 방안에도 재정을 추가로 투입한다.
26일 오후 어둠이 내린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 주왕산국립공원에 산불이 번지고 있다. 2025.3.26/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
'10조 필수 추경안' 꺼내든 정부…관건은 신속성 "3주 내 국회 통과"
사상 최악의 산불 피해는 정부 주도의 추경 편성 논의를 가속하는 촉매제가 됐다.
정부는 여야 동의를 거쳐 4월 중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즉시 추경안 편성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필수 추경'이라 명명할 정도로, 사안이 시급한 만큼 신속한 재정투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재난·재해 대응 △통상 및 AI 경쟁력 강화 △민생 지원 등 3대 분야 중 신속 집행이 가능한 사업만을 포함한 10조 원 규모의 추경을 필수 추경으로 추진한다.
이는 애초 여당이 제시한 2조 원 규모의 '예비비 원포인트' 추경보다 더 나아간 안이다. 여야가 '예비비 삭감' 문제로 논쟁을 벌이며 국회 추경 논의가 멈춰 선 상황에서 정부는 선제적으로 여야 이견이 없는 항목부터 추경을 제안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정부의 이번 필수 추경 발표에 대해 "산불 대응·피해 지원을 위한 예산 집행이 시급한 상황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상황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여야가 동의하는 대로 즉시 추경안 편성에 돌입한단 계획이다. 추경 절차는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로부터 예산요구안을 받아 추경안을 편성한 뒤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통상적으로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는 정부안 편성부터 국회 심사까지 1~2개월 안팎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이번엔 신속 집행 가능한 '필수 사업'만 넣는 만큼, 이 같은 절차를 '3주 내'로 당긴다는 계획이다.
다만 다음 달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도 예정돼 있어 여야의 조속한 동의를 얻는 것이 관건이다.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4월 초중순 이뤄지면 정국은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고, 추경 논의는 뒷전으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재원 마련 방안도 정부가 고민해야 할 숙제다. 2년 연속 수십조 원대 '세수 펑크'가 발생한 만큼 추경에 투입할 재원을 어디서 마련하느냐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추경의 재원으로는 △세계잉여금 △한국은행잉여금 △기금여유재원 △지출구조조정 등이 있다. 여기서 마련할 수 있는 재원은 세계잉여금에서 최대 1조8000억 원, 한은잉여금에서 7000억 원 정도다. 나머지 7조 원가량의 재원은 적자국채 발행으로 채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날 최 부총리는 "여야가 필수 추경의 취지에 동의해 준다면 정부도 조속히 관계 부처 협의 등을 진행해 추경안을 편성,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겠다"며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어 "다만 국회 심사 과정에서 여야 간 이견 사업이나 추경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의 증액이 추진된다면 정치 갈등으로 인해 국회 심사가 무기한 연장되고 추경은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없게 된다"며 "4월 중 추경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여야의 초당적 협조를 요청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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