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
친족의 신용카드를 도용한 범죄에 대해 가맹점·금융기관도 피해자일 수 있기 때문에 친족상도례(친족 간 재산범죄 처벌을 면제해주는 조항)로 처벌을 면제해선 안 된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최근 처제 신용카드 정보를 무단으로 사용해 7700여만원을 가로챈 A(36)씨에게 친족상도례를 적용해 형을 면제한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 2021년 12월부터 2022년 2월까지 같이 살던 처제 B씨의 신용카드 비밀번호와 계좌번호, 인적사항 등을 도용해 약 7700만원을 가로챈 혐의(컴퓨터 등 사용 사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처제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신청하거나 결제한 뒤,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이른바 ‘카드깡’ 방식을 썼다. A씨는 이밖에도 회삿돈 1억2000만원가량을 횡령한 혐의(업무상횡령), 중고 거래 사기로 13만원을 챙긴 혐의(사기)도 받았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카드 도용 범죄의 피해자를 가맹점이나 대출금융기관으로 본다면 처벌을 내릴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검사가 제출한 수사보고서에 ‘계좌이체의 경우 금융기관 간 거래가 먼저 이뤄지고, 카드결제의 경우에도 카드사가 가맹점에 금액을 먼저 지급한 뒤 최종적으로 소비자가 카드 대금을 지급하는 구조이므로 직접 피해자는 카드사·금융기관’이라는 취지가 기재돼있다는 점을 들어 “피해자를 가맹점 또는 대출금융기관 등으로 기소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하도록 한 뒤에 친족상도례 적용 여부를 판단했어야 한다”며 이 부분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했다.
한편, 친족 사이에서 일어난 재산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친족상도례 조항은 작년 6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대법원은 다만 “이 사건에까지 헌법불합치 결정의 소급효를 인정할 경우, 오히려 그 조항에 따라 형이 면제됐던 사람들에게 형사상 불이익이 미치게 된다”며 “이 조항(친족상도례)은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는 날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A씨 범죄는 헌법불합치 결정 전에 이뤄진 것이어서 친족상도례 적용을 검토할 수 있지만, 피해자를 친족(처제)이 아닌 카드사·금융기관으로 보면 처벌할 수 있다는 취지다.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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