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컬럼비아대 캠퍼스 내에서 학생 시위자들이 자신들의 천막 시위 구역에 모여 있는 모습. 뉴욕/AP 연합뉴스 |
미국 컬럼비아대가 연방정부와 갈등 끝에 카트리나 암스트롱 임시 총장을 전격 교체했다. 암스트롱 총장은 학내 비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였지만 교체를 피하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다양성 정책 및 반유대주의’ 등을 이유로 전국 대학과 ‘문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최선두에 선 컬럼비아대를 향한 연방 정부의 압박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벌써 세번째 총장 맞는 컬럼비아대
컬럼비아대는 28일(현지시각) 저녁 구성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암스트롱 총장의 헌신에 감사를 표하며 대학 이사회 공동 의장인 클레어 시프먼을 임시 총장에 임명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봄 가자 전쟁 반대 시위 이후 세 번째 총장이다.
컬럼비아대는 지난주 연방정부가 제시한 여러 요구사항을 수용했다. 이미 삭감된 약 4억 달러 규모의 연방 지원 재개를 ‘논의하기 위한’ 조건이었다. 컬럼비아대는 체포권한을 가진 캠퍼스 보안요원 36명을 배치하고 반유대주의에 대한 정의를 공식 채택하기로 했다. 또한 중동·남아시아·아프리카학과에 대한 감독 강화와 입학정책 전면 재검토 등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조치는 ‘항복’으로 받아들여졌다. 삭감된 지원금은 컬럼비아대 운영 수입의 약 5분의 1에 해당한다.
이 조치에 만족했던 연방 정부는 최근 암스트롱 총장이 비공개 회의에서 ‘연방 정부와 합의를 가볍게 치부하는 발언’을 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일부 교육계 인사들은 대학이 소송을 통해 연방정부와 충분히 다퉈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연방정부 요구를 받아들인 점이 다른 대학들에 유사한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60개 대학을 반유대주의 혐의로 조사하고 있으며 ‘연방 지원금 삭감 조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동시에 52개 교육기관의 다양성 프로그램을 ‘인종적 선호와 고정관념’을 사용한다는 혐의로도 조사 중이다. 최근 연방정부는 과거 트랜스젠더 선수를 여성 수영팀에 포함했다는 이유로 펜실베이니아대에 1억7500만 달러의 자금 지급을 보류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미국 대학들과 전례 없는 대립
트럼프 행정부가 대학들과 전례 없는 대립을 이어가는 근거는 민권법이다. 1960년대 민권운동의 산물로 1964년 제정된 민권법은 ‘연방 재정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나 활동에서 인종, 피부색, 출신 국가를 이유로 어떤 사람도 참여에서 배제되거나, 혜택을 거부당하거나,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인종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조항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법을 근거로 대학들의 ‘디이아이’(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 트랜스젠더 학생 포용 정책, 팔레스타인 시위 등이 민권법이 금지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진보 진영 인사들도 컬럼비아대 시위대의 반유대주의적 행태가 도를 넘었음에도 학교가 적절히 제어하지 않았다고 보기도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잡지인 애틀랜틱은 최근 ‘컬럼비아대의 반유대주의 문제’라는 제목의 분석기사에서 “유대인 학생들에게 심각한 물리적·언어 폭력이 행해졌음에도 학교는 기이하리만큼 침묵했다. 유대인이 아닌 다른 인종 집단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절대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며 “컬럼비아대만이 가진 ‘반유대주의에 관대한 문화’가 트럼프 등 보수정권에 공격 빌미를 줬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대학에 대한 공격적인 개입은 대학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컬럼비아대에 요구한 ‘특정 학과에 대한 관리 감독 강화’ 조치는 연방정부가 학교의 구체적인 운영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으로 헌법이 정한 한계를 심각하게 위반했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대학교수협회 컬럼비아대 지부는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지난 1년 동안 유대인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해 많은 조치를 취했으며, 때로는 그로 인해 캠퍼스 내 다른 집단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며 “컬럼비아대에 대한 공격은 전국 다른 대학들에 대한 공격의 전례가 될 것이다”고 우려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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