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작가 샐리 페이지 |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평범해 보이는 영국 케임브리지의 청소 도우미 재니스는 사실 뛰어난 제빵 솜씨를 갖추고 납땜인두와 전동 공구를 능숙하게 다루며 청소 장비를 직접 만드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이처럼 뛰어난 실력으로 신망받는 재니스는 고객들의 이야기를 자기 머릿속의 도서관에 수집한다.
오페라에 매료돼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무작정 가출해 런던으로 떠나 성악가가 된 이야기, 괴한에게 공격당하는 남성을 구해줬다가 그 남성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이야기, 갑작스레 남편을 떠나보내고 장의사가 되는 이야기까지.
"그래, 자네의 이야기는 뭐야?"
재니스는 이 질문에 당황하며 답변을 피하는데, B 부인은 대답을 다그치는 대신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에 매료된 재니스는 차츰 이 괴팍한 부인과 우정을 나누게 되고,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자기만의 이야기를 털어놓기에 이른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책 표지 이미지 |
국내 번역 출간된 영국 작가 샐리 페이지의 장편소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의 줄거리다. 이 책은 타인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한 청소 도우미의 삶을 보여준다.
최근 연합뉴스와 화상으로 만난 페이지는 "누구에게나 자기 이야기가 있고, 겉보기에는 평범할지라도 놀라운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소설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재니스는 청소 도우미라는 직업 때문에 그리 주목받지 않으면서도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집을 속속들이 볼 수 있다"며 "이야기를 찾고 듣는 데는 아주 적절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는 곧 '인생' 또는 '사람'과 동일시된다. B 부인이 재니스에게 "모든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드러난다.
페이지는 "이야기는 곧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이야기에는 각자가 어떻게 살았는지 담겨 있고 자기 인생 속 최고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저는 작가가 되기 전 여러 직업을 가졌고 여러 사람과 만나왔는데, 평범하게 수다를 떨다가 상대에게서 갑자기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 경험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소설에 등장한 여러 이야기는 대부분 실화에 바탕을 뒀다고 한다. 한 경찰관과 경찰서를 찾아온 여성이 첫눈에 서로에게 반한 사랑 이야기는 작가의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다.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사실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게 이 소설 속에 담긴 여러 이야기의 공통점인 것 같아요."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작가 샐리 페이지 |
페이지는 독특한 이력의 작가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런던 광고업계에서 일했으며 여가 시간을 활용해 플로리스트 과정을 공부하다가 꽃집을 열었고, 꽃을 매개로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데뷔 소설인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2022년 영국 출간(원제 'The Keeper of Stories') 당시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원고를 다 쓰고도 출판해줄 회사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작가는 "끝내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도 계속 쓸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하기에 이르렀다"고 당시를 돌아보며 "그에 대한 내 대답은 글 쓰는 자체를 사랑하니까 계속 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될 때만 해도 책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출판사에서 마케팅 비용도 많이 배정하지 않았지만, 서서히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6주 만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국에서만 50만권 이상 팔렸다.
페이지는 "이 소설은 '평범해도 괜찮다'고 말하는데, 그 점이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며 "한 독자는 '자존감이 낮았는데 재니스를 만나 위로받았다'고 이메일을 보내왔다"고 했다.
데뷔작 이후 페이지는 영국에서 세 편의 소설을 더 펴냈지만, 한국에 작품이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한국 독자들과 만나는 소감도 전했다.
"정말 기쁘고, 영광입니다. 한국 독자들이 제 이야기를 즐겁게 읽고 이야기에서 울림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다산북스(다산책방). 노진선 옮김. 432쪽.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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