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으로 무너진 미얀마 중부 만달레이의 사원 건물 모습. 연합뉴스 |
이번 미얀마 강진으로 사망자 수가 10만명이 넘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자 전문가들은 피해가 유독 컸던 이유로 '누적된 지각 뒤틀림', '취약한 도시 인프라', '붕괴된 대응 체계' 등을 꼽았다.
얕은 진원, 200년 묵은 뒤틀림
미얀마 내륙서 발생한 규모 7.7 강진으로 태국 방콕에서 공사 중인 30층 건물이 무너진 현장에서 29일 구조작업이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
30일 외신, 지진 연구소, 미·영 당국 등에 따르면, 최근 미얀마 중부를 강타한 규모 7.7~7.9 강진의 피해를 키운 핵심 원인은 진원 깊이였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의 진원이 지표면에서 불과 10km 아래였다고 분석했다. 깊이가 얕을수록 지진의 충격이 거의 약화되지 않고 지표에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피해가 훨씬 커진다.
또한 이 지역은 오랜 시간 지진이 없던 '지진 공백(seismic gap)'이었다. 도호쿠대 도다 신지 교수는 교도통신을 통해 "1839년 대지진 이후 약 200년 동안 사가잉 단층에 뒤틀림이 누적돼 있었으며, 이번 지진은 그 에너지가 한꺼번에 분출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는 "단층의 어긋남이 아직 남아 있어 향후 네피도 등 인근 지역에서 다시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미얀마는 인도판과 유라시아판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다. 이번 지진은 국토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약 1200km 길이의 사가잉 단층을 따라 발생했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레베카 벨 교수는 SCMP와의 인터뷰에서 "이 단층은 매우 직선적인 구조를 갖고 있어 단층이 미끄러질 수 있는 면적이 넓고, 이로 인해 더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앙은 미얀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 북서쪽으로 인구 15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대도시다. 큰 규모의 얕은 지진이 인구 밀집 지역 바로 아래에서 발생했으니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건물은 있었지만 기준은 없었다
전문가들은 지진 피해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건물의 구조를 꼽는다. 미얀마는 최근 수십 년간 경제 개발과 함께 고층 건물들이 빠르게 늘었지만, 내진 설계에 대한 규제와 감리는 거의 부재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로열 할러웨이대 이언 왓킨슨 교수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미얀마는 대부분이 목조 주택이나 벽돌로 지어진 종교 건축물이었지만, 이번은 철근콘크리트 고층 건물들이 본격적으로 지진에 노출된 첫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지진이 도시 인프라를 정면으로 시험했다"고 덧붙였다.
영국 지질조사소의 브라이언 밥티 박사에 따르면, 약 280만명이 비보강 벽돌이나 목조 주택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 건축물은 진동에 극도로 취약하며 피해가 집중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AFP는 "미얀마는 오랜 내전으로 인해 건물의 전반적인 내구성과 안전성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구조적 취약성은 동일 규모의 지진이라도 피해 차이를 만들어낸다. 실제 지난해 일본 노토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7.6 지진은 미얀마 지진과 진원 깊이도 비슷했지만 사망자는 570명에 그쳤다. 인구 밀도와 건축 기준의 차이가 영향을 미친 셈이다.
게다가 이번 지진은 국경 너머까지도 피해를 남겼다. France24는 진앙지에서 1천km 이상 떨어진 방콕 고층 건물이 무너졌는데, 이는 현지의 연약한 지반이 진동을 증폭시킨 데다 '평슬래브(flat slab)' 방식으로 설계된 건축물이 지진에 매우 취약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무너진 대응 체계, 구조도 맨손으로
무너진 미얀마 만달레이 그레이트월 호텔. 연합뉴스 |
미얀마는 2021년 쿠데타 이후 군부가 장악하고 있고 그로 인한 내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4년에 가까운 내전은 의료와 구조 시스템을 붕괴시켰고, 행정 기능 역시 사실상 마비 상태다.
France24는 "구조 시스템이 이미 무너진 상태에서, 이 같은 재난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BBC 역시 "수많은 지역에서 전기가 끊기고, 휴대전화 통신이 불안정해 구조와 취재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일부 구조대가 맨손으로 사람을 파내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정보 접근의 어려움도 피해를 키웠다. 미얀마 군정은 언론, 인터넷, 통신망 등을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 외신 기자의 출입조차 제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초기 대응은 물론 피해 현황 파악조차 지연됐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이번 지진의 사망자가 10만명 이상일 가능성이 36%, 1만명 이상일 가능성은 71%에 이르고 피해 범위 또한 광범위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 피해는 미얀마 국내총생산(GDP)을 초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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