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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실화 배상하다 패가망신?…징역형은 겨우 5% 그쳤다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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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실화자 처벌수위·배상범위는
“과실치사, 인과관계 찾기 힘들 수 있어”
실화자별로 불을 낸 경위·자연환경따라 배상범위 달라질듯
헤럴드경제

25일 경북 안동시 남선면 인근 야산으로 불이 번지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윤호 기자]영남권을 덮친 동시다발적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해 역대 최대면적 피해를 기록하면서 화재를 낸 가해자의 민형사상 책임에도 관심이 쏠린다.

산불실화는 과실이라 하더라도 산림보호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상 실화죄(1500만원 이하 벌금)보다 처벌이 훨씬 무겁지만, 방화 등 고의가 아닌 과실범 또는 초범·고령인 경우는 대부분 약한 처벌에 그친다는 한계도 있다. 다만 일각에선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민사상 배상범위에는 산림과 농지, 주택, 상가 등 재산상의 피해는 물론 사망자·부상자에 대한 인명 피해, 이재민의 정신적 피해에 따른 위자료 등이 포함된다. 화재를 낸 가해자의 개별경위와 책임범위, 당시 바람의 세기 등 자연환경, 불을 끄려 노력했는지 등을 일일이 산정할 경우 형사상 처벌수위는 물론 민사상 배상범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검거자중 징역형은 5%…고성산불 이재민은 87억원 받아
산림청에 따르면 2021년 이후 지난 24일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 2108건 중 방화·실화 검거 건수는 817건(38.6%)이다. 사법 처리 결과는 징역 43건, 벌금 161건, 기소유예 105건, 내사 종결 69건, 사회봉사명령 및 기소중지 등 기타 439건으로 분류된다. 검거자 가운데 징역형 비율은 5.3%에 그치는 셈이다.

2017년 3월 강원도 강릉 옥계에서 담뱃불 실화로 불을 낸 부근 주민 2명은 재판 끝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고의로 산불을 내면 처벌이 훨씬 무거워 징역 15년형까지 처할 수 있다. 2022년 집에서 토치로 불을 질러 강릉시 옥계면과 동해시 일대에 대형 산불을 일으킨 이모 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12년형이 확정됐다.

민사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는 물건이 멸실된 경우 멸실 당시의 시가를, 훼손됐을 때는 수리 또는 원상회복에 드는 비용을 기준으로 따진다. 피해자가 주장하는 금액보다 법원이 산정하는 손해액이 일반적으로 낮은 이유다.

또 민법은 제765조(배상액의 경감청구)에서 ‘손해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것이 아니고 배상으로 인해 배상자의 생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경우 배상액의 경감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한다. 통상의 범위를 벗어난 예견하지 못한 특별손해에 대해서도 인정받기 쉽지 않다. 특별손해는 상대방이 그 특별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해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2019년 4월 강원 고성·속초 일대에서 전신주에서 튄 불꽃으로 대형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한국전력공사의 배상 책임은 제한적이었다. 법원은 한전의 전신주 관리 부실 등으로 산불이 발생한 점은 인정했으나, 강풍 등 자연력과 지형이 불길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쳐 모든 배상 청구액을 부담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정부와 지자체는 한전에 3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2심을 마친 현재까지 27억원의 배상 책임만을 인정받았다. 이재민에게는 피해 감정액의 60%, 주민 60명 청구 금액의 3분의 1인 87억원과 지연손해금만이 인정됐다. 형사 책임을 묻기 위해 기소된 한전 직원들은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2005~2011년 37차례에 걸쳐 울산 등지에서 실수가 아니라 고의로 산불을 낸 방화범 ‘봉대산 불다람쥐’ 김모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10년형과 함께 손해배상금 4억2000만원을 산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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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경북 의성 고운사 입구 인근에 세워진 최치원 문학관이 전소되고 있다. [연합]



산불 실화자 다수…사례별로 처벌수위·배상범위 차이날 듯
이번 산불의 발화 원인은 경북 의성에서 묘지를 정리하던 성묘객의 실수, 경남 산청에서 잡초 제거 중 예초기에서 튄 불씨, 울산 울주에서 용접 작업 중 튄 불씨 등 개인의 과실에 의한 ‘실화’ 등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산림보호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방화일 경우 5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에 처해지며 민법 제750조에 따라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진화에 최장 시간이 걸린 2022년 울진·삼척 산불 피해액은 9086억원, 2019년 고성·강릉·인제 산불 피해액은 2518억원 수준이다. 이번 영남권 산불화재는 인명과 문화재 소실 피해가 크며 원칙적으로 모두 배상대상이 될 수 있다. 배상액에 따라 ‘패가망신 수준’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실화자들에게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 측의 산출 기준에 따라 달라지며 최종 배상액은 법원이 감정·심리를 통해 결정한다. 실화자들에게 손해배상의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실제 국가나 개인이 받게 될 금액은 미미할 가능성이 있다.

안영림 법무법인 선승 변호사는 “예를 들어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태웠는지, 예견하기 힘든 예초기 불꽃에서 비롯됐는지 등 개별사정과 당시 바람의 세기 등 자연환경, 불을 끄려는 노력(또는 도망갔는지) 등을 개별적으로 산정해 형사상 처벌수위는 물론 민사상 배상범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별 원인에 의한 화재범위가 합쳐졌을 경우 공동불법행위로 가겠지만 인과관계를 따지기 애매할 수 있다. 보험사가 배상한 부분은 가해자 대상으로 구상권을 행사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 고성산불과 관련한 법원 판결문에서는 “산불 발생 지역은 풍속이 빨라지는 구간이었고, 산불이 피고의 중대한 과실로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급속하고 광범위하게 확산한 원인 중에는 불에 붙기 쉬운 침엽수림이 인근 산간에 다수 있었고, 당시 건조주의보가 발효돼 삼림이 건조한 상태였으며 야간에 산불이 발생하는 등 진화에 차질을 빚은 원인도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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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경북 의성군 고운사 주차장에서 바라본 주변 산들이 불타고 있다. [경북도]



과실치사도 적용? 현행 처벌수위는 괜찮나
우리 형법에 ‘실화치사죄’는 없기 때문에 이번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에 대해 ‘실화죄+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다만 인과관계를 적용해 인명에 대한 책임을 묻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발화지점과 인명피해가 난 지점까지 거리가 멀다면 거기까지 번질 수 있다는 예측을 하기 힘들다고 볼 수 있다”며 “예를 들어 화재대피중 차를 타고 가다가 사망한 경우나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경우 등은 실화에 의한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실화죄 처벌수위가 외국에 비해 낮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와 주(州)정부 차원에서 각각 산불 관련 규정이 있는데, 6개월~3년 이하 징역수준이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산림에 ‘무모하게’(recklessly) 불을 냈을 경우 최대 3년형을 받는데, 이때의 ‘무모성’은 고의와 과실의 중간 영역에 해당한다. 다만 미국에선 실화자에 대해 소방당국이 화재 진압 비용을 법적으로 청구할 수 있거나 법원이 이들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령할 수 있다.

망치질을 하다 튄 불꽃 등 우발적 산불발생의 경우에는 불기소 처분했다.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포터 밸리에서 목장주가 말벌 둥지 입구를 막으려고 망치로 쇠말뚝을 내리치다가 그 불똥이 덤불로 옮겨붙어 대규모 산불이 발생한 적이 있다. 캘리포니아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 화재로 인한 피해 규모가 45만9123에이커(약 1858㎢)로 당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일본의 경우 실화자는 50만엔 이하의 벌금형(방화자는 징역형)에 처하며, 독일은 과실로 인한 화재로 숲이나 산림을 불태운 자는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을 부과받는다. 스웨덴의 경우 방화에 대해 2년 이상∼8년 이하의 징역을 규정하지만, 과실 또는 부주의로 불을 냈을 경우 최대 6개월 징역 또는 벌금형으로 경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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