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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이케아 방화 공격, 리투아니아의 불안한 날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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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러시아 침공 3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 지원’ 정상회의를 한 스웨덴·노르웨이·에스토니아·캐나다·리투아니아·핀란드·우크라이나·라트비아·덴마크·아이슬란드·스페인 등 나토 회원국 정상들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등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뒤 러 테러·위협 급증
러,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서 군사훈련도
징병제 부활에 군사비 늘리는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 검찰이 지난 17일 러시아군 참모본부와 관련된 인물들을 기소했다. 지난해 5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이케아 매장에서 불이 났는데 그것이 러시아 쪽 방화 공격이었다는 것이다. 하필 이케아 매장을 공격한 것은, 이 브랜드의 노란색과 파란색 로고가 ‘우크라이나 국기 색깔과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리투아니아 검찰은 이 사건을 러시아군 정보기관 지아르유(GRU)의 광범위한 다단계 네트워크가 공격을 위해 가동된 “테러 행위”라고 불렀다. 이케아 사건이 일어났을 무렵 이웃한 폴란드에서도 쇼핑센터 화재가 일어났는데, 폴란드도 이를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사보타주 공격으로 해석한 바 있다.



지아르유는 ‘러시아 국가 참모국 본부’인데, 이전 이름인 군 정보국으로 많이 불린다. 자체 특수부대를 갖고 있고, 러시아의 다른 정보기관들과 비교해 특히 위험성이 높은 작전을 직접 수행한다고 한다. 소련의 대표적 정보기관이던 케이지비(KGB, 현재의 FSB)보다는 덜 유명했지만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과의 비밀 협상에 깊이 관여했고 소련이 해체된 뒤에도 주요 정보기관으로 남았다.



겨우 노랑 파랑 로고를 쓴다는 이유로 이케아를 공격했다는 게 우스꽝스럽긴 하다. 굳이 따지자면 이케아는 스웨덴 기업이고, 이 회사의 노랑과 파랑은 우크라이나 국기가 아니라 스웨덴 국기에서 나왔을 테다. 그런데도 러시아가 미워할 이유를 찾고자 한다면 없지는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에 이케아가 러시아 사업을 접은 것, 긴 세월 중립을 지키던 스웨덴이 우크라이나 전쟁 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한 것, 우크라이나 이재민들을 위해 여러 차례 거액을 기부한 것 등등.



지난해 5월 방화는 시한폭탄에 의해 일어났다. 화재는 곧 진압됐지만 그저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러시아와 가까운 리투아니아 같은 발트해 국가들의 공포는 저 멀리 떨어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혹은 한국의 친러시아 논평가들)이 쉽게 비웃고 넘어갈 만한 게 아닐 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뒤 ‘나라마다 스트레스 요인은 다르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최대 스트레스는 러시아 옆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임을 표현한 인터넷 밈이 떠돈 적 있었다.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소련에서 갈라져 나온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불안감은 클 수밖에 없다.



발트해 동쪽 해안에 자리 잡은 리투아니아는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함께 ‘발트 3국’으로 불린다. 러시아와 리투아니아 사이엔 라트비아, 폴란드, 벨라루스가 있지만 기이한 지리적 사실로 인해 러시아의 ‘접경국’이다. 리투아니아 남서쪽에 러시아 땅인 칼리닌그라드가 있어서다. 러시아와 떨어져 있는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는 북유럽 국가들 입장에선 러시아가 꽂아놓은 칼이다. 오래전부터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에 불만이 있을 때면 칼리닌그라드의 기지에서 군사훈련을 하면서 위력을 과시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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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 그래픽


면적은 6만5300㎢에 불과하고 인구는 300만명도 채 못 되는 나라가, 옆구리에서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러시아를 보면서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를 보면 더 이해하기 쉽다. 한때 공국이 있었고 폴란드와 연방을 꾸린 적도 있었지만 18세기부터 러시아 통치를 받았다. 1차 대전이 끝날 무렵 독립공화국을 세웠지만 2차 대전 때 소련이 다시 점령했다. 1950년대 초반까지도 소련에 맞서 무장 저항을 했던 리투아니아는 소련이 공식 해체되기도 전인 1990년 3월 연방 내 공화국들 가운데 맨 먼저 독립을 선언했다. 그 뒤로 유럽연합과 나토에 가입했고, 유럽 내 이동의 자유를 규정한 솅겐 협정에 들어갔고,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5만달러가 넘는 고소득 국가가 됐다.



리투아니아에 공포가 시작된 것은 2014년부터다. 크림반도를 빼앗고 우크라이나 내전을 조장한 러시아는 그해 말에는 칼리닌그라드에서 보란 듯이 군사 훈련을 했다. 이듬해 리투아니아는 징병제를 부활시켰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자 리투아니아는 곧바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함께 러시아어 방송을 금지하고 러시아 제재에 나섰고 러시아 대사를 추방했다. 의회는 러시아의 행위를 테러와 학살로 규정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러시아는 “러시아 혐오”라고 주장했다. 한술 더 떠 러시아의 한 의원은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철회시키는 법안”을 내놨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늘 그래 왔듯이, 이미 30여년 전 독립한 리투아니아도 ‘러시아에 딸린 존재’일 뿐 별개의 주권국가임을 인정하지 않는 모스크바식 사고방식이 다시 표출된 것이다.



리투아니아 공영방송 엘아르티(LRT)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 수도 빌뉴스에서는 “누구나 전쟁 이야기를 하고” “전쟁 스트레스 때문에 군인들이 극도의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의회에서 안보 상황을 놓고 1991년 독립 시기 이래 처음으로 비공개회의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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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3주년을 맞아 열린 전쟁 반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대형 우크라이나 국기를 운반하며 연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남쪽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맹방인데, 러시아가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를 잇는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그 사이에 있는 리투아니아를 침공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거론된다. 냉전 시대에 러시아 발트함대의 주요 기지였던 칼리닌그라드는 발트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러시아와 분리된 역외영토가 됐다. 얼마 전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이 땅이 “역사적으로 리투아니아의 일부였다”고 발언했다. 이에 크렘린은 “그런 발언은 러시아의 안보를 위한 잠재적 조치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했다. 자신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역사적 일부’였다며 침공해놓고 말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손잡을 태세를 보이자 리투아니아는 힘겹게 자구책을 찾고 있다. 이미 최근 몇년 새 군사비를 국내총생산의 3%로 늘렸는데 2030년까지 5~6%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난해 통과된 올해 국방예산은 26억달러이니 러시아의 1260억달러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말이다. 리투아니아가 침공을 당할 경우 나토군이 배치되기 전 열흘이라도 버티기 위해선 지금보다 국방 예산을 4배로 늘려야 한다는 연구도 있었다. 그러나 국방비 증액은 결국 미래 자원을 낭비하는 출혈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 유럽연합 간 지정학적 충돌의 최전선이 될 수밖에 없는 이 나라 사람들, 우크라이나 전쟁이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간 제국주의 해법으로 종전된들 발 뻗고 잘 수 있을까.



구정은 국제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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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 국제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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