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뉴시스] 산불진화대원들이 27일 밤 경북 안동시 일직면 원호리 도로가로 내려온 불길을 진화하고 있다. 2025.03.28. (사진=경북소방본부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영남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대형 산불 재해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학계에서는 산불로 인한 장기적인 건강 피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9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하버드대학교,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등 10여개 대학·기관이 지난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광역권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이 남긴 장기 영향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이들 공동연구진은 특히 LA 광역권 북부에 있는 알타데나 지역에서 산불 진화 이후에도 남아있는 실내·외 오염 물질의 성분과 장기 잔류 여부, 이같은 오염 물질에 노출된 이들의 건강 상태를 추적하는 장기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고농도 벤젠에 장기간 노출되면 빈혈, 백혈병, 생리불순, 저체중아 출산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벤젠 자체는 산불로 인한 연기 등에서 흔히 검출되지만, LA 산불과 같이 자연과 도시 등 거주지가 함께 불탄 상황에서는 보다 더 장기간 잔류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LA 산불 뿐 아니라 2021년 콜로라도주 산불 당시에도 화마에서 살아남은 주택을 검사한 결과 당초 몇 시간~며칠이면 사라져야 할 벤젠이 수주 이상 잔류했던 것으로 파악된 바 있다. 이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못했다.
벤젠은 자연적인 산불에서도 만들어지지만 화마가 주택들을 불태우면서 산불로 인한 연기 성분은 더 복잡하고 위험해졌다. 주택 내에 있는 페인트·배터리·비닐 외장재·유리섬유 단열재·전선·나일론 옷·고무 타이어 등까지 태우면서 유해 화학물질이 만들어진 것이다.
LA 산불 당시에는 알타데나에서 수㎞ 이상 떨어진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칼텍)에서도 건물 내부에 유입된 재에서 고농도 납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지역 인근의 생존 주택에서도 오염 물질이 섞인 연기와 재가 스며들며 실내 먼지, 공기, 인근 토양 등에서 납·리튬·벤젠·플라스틱 화합물 등의 유해물질이 다량 검출됐다.
이에 공동연구진은 산불 피해를 받은 주택의 실내외 공기질, 수돗물, 인근 토양, 실내 유입 재, 가전에 남은 잔존물질 등을 대상으로 종합 분석에 나섰다. 이번 연구는 약 2500만 달러(약 367억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 향후 10년에 걸친 장기 계획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7일(현지시각)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퍼시픽 팰리세이즈 지역에서 발생한 '팰리세이즈 파이어' 산불이 주변을 휩쓸고 있다. 이날 팰리세이즈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주민 최소 3만 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소방 당국은 소방관 250여 명을 투입해 화마와 싸우고 있지만, 건조한 기후에 강풍까지 불면서 진압에 난항을 겪고 있다. 2025.01.08. |
연구진은 화재 진압에 참여한 소방관과 주민을 대상으로 산불의 건강영향 연구도 병행 중이다. 소방관과 주민들의 생물학적 노출 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다.
연구진은 실리콘 팔찌, 혈액·소변 검사, 폐 기능 측정을 통해 소방관 및 주민의 체내 노출 물질을 추적하고 있다. 일부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에 실리콘 팔찌를 착용하고 들어갔는데, 이 팔찌는 몸에 흡수된 화학물질을 포착해 어떤 오염물질에 노출됐는지를 보여준다. 또 일부 인원을 대상으로는 20년 간 추적조사까지 계획 중이다.
특히 화재 직후가 아니라 수개월~수년 후에 호흡기 질환, 면역계 이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장기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라는 게 연구진의 판단이다.
이번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하버드대의 환경전문가 카리 나도 교수는 "이번 연구는 공기·물·토양을 동시에 측정하고, 그 대상도 집과 학교 실내 공간까지 포함하는 첫 사례다. 기억 T세포 하나가 림프종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며 장기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연구진은 사람의 주거지까지 불태우는 대형 산불 문제가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더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학술지 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인바이런멘털 리서치 레터스)의 2023년 게재 논문에 따르면 2001년 이후 도시-야생이 만나는 경계 지역이 24% 증가했고, 해당 지역에서 발생하는 화재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의 우려대로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도 자연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까지 퍼지며 인명·재산 피해를 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당국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당장의 큰 산불이 잡혀가고 있는 가운데, 후속 조치로 실내 오염물질 잔류 여부, 주민 노출 실태, 장기 건강 영향에 대한 조사나 추적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 변화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대형 산불이 반복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언스는 미국의 산불 피해 추적 연구를 소개하며 "도시로 번진 산불이 장기적으로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점점 더 흔해지고 있다"며 "특히 주택 내부에 남은 오염물질이 장기간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등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syh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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