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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레터] 봄비를 기다리며

조선일보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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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아람 Books 팀장

곽아람 Books 팀장

연일 휴대전화에 울리는 산불 경보. 숲이 타 들어가는 영상과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함께 타 들어갔습니다. 불길에 휩싸여 목숨을 잃은 사람들, 채 피지도 못한 채 타 버린 꽃송이와 새순, 생사를 알 수 없는 산짐승들…. 이번 봄은 왜 이리도 잔인한지요. 이처럼 애타게 봄비를 기다린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봄비를 읊은 많은 시가 그리움을 주제로 합니다. “이 비 그치면/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로 시작하는 이수복 시인의 ‘봄비’가 대표적이지요. 박목월의 시 ‘봄비’는 또 어떤가요? 시인은 아련한 마음으로 골똘히 임을 그려 봅니다. “조용히 젖어드는/초가지붕 아래서/왼종일 생각하는/사람이 있었다//월곡령 삼십 리/피는 살구꽃/그대 사는 마을이라/봄비는 나려//젖은 담 모퉁이/곱게 돌아서/모란 움 솟는가/슬픈 꿈처럼.”

그렇지만 이 봄, 우리에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임을 추억하는 서정은 사치인 것 같습니다. 이상국 시인의 ‘비를 기다리며’는 간절함으로 시작합니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우장도 없이 한 십리/비 오는 들판을 걸었으면 좋겠다/물이 없다/마음에도 없고/몸에도 물이 없다/비가 왔으면 좋겠다/멀리 돌아서 오는 빗속에는/나무와 짐승들의 피가 들어 있다/떠도는 것들의 집이 있다.”

인간을 이어 나무와 짐승, 떠도는 것들에 대한 염려를 담은 시인의 마음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문을 열어놓고/무연하게/지시랑물 소리를 듣거나/젖는 새들을 바라보며/서로 측은했으면 좋겠다/비가 왔으면 좋겠다/아주 멀리서 오는 비는/어느 새벽에라도 당도해서/어두운 지붕을 적시며/마른 잠 속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

불길은 어느 정도 잡혔다지만 상처가 아물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굵은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져 땅과 나무를 적시길, 화마가 할퀴고 간 숲이 회복하길 기원합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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