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
수전 매그새먼·아이비 로스 지음|허형은 옮김|월북|368쪽|2만2000원
누구에게나 사는 게 너무 버거운 순간이 있다. 불안과 스트레스가 시시때때로 자신을 짓누르고, 극심한 번아웃이 오기도 한다. 이때 현대인들이 가장 손쉽게 의존하는 건 흡연, 음주, 폭식. 저자는 이를 “무용한 발버둥”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들은 뇌의 화학적 상태를 바꿔 단기적으로 기분을 나아지게 할 뿐, 결코 지속적이지 않으며 장기적으로는 몸과 마음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우리 모두 일상을 통해 예술이 무용하지 않다는 걸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 음악 한 곡이 주는 위로와 그림 한 점에서 오는 평안은 누구나 경험해 봤을 터. 이런 경험을 단지 느낌에만 머무르게 하는 게 아니라 뇌과학적 수준에서 이해하고 설명해 내는 게 ‘신경 미학’의 역할이다. 물론 그동안 예술을 단순한 ‘도피처’나 ‘사치’로 여겼던 사람들에겐 훌륭한 반박 자료를 제공하는 책이 될 것이다.
30여 년 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교육부 총괄을 맡았던 필립 예나원은 재밌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관람객의 80%가 그림을 보며 한 가지 압도적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 바로 ‘호기심’이다. “인간은 탐구 끝에 답을 얻어 호기심을 충족하면 뇌의 보상 화학물질인 도파민이 몸에 퍼져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그 뿐 아니다. 호기심은 공감력을 키우고 관계를 강화시킨다.
우리는 미술관에서 호기심의 사촌격인 ‘경이로움’도 발견할 수 있다. 경이로움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는 의외성에 놀랐을 때와 아름다움에서 촉발된다고 말한다. 미술관이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최적의 장소임은 분명하다.
미술관뿐 아니다. 엑서터대학교에서 이뤄진 연구에 따르면 시를 읽자 휴식 상태와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이 fMRI 영상으로 확인됐다. 시를 읽다 보면 신경과학자들이 ‘오한 직전’이라고 칭하는 상태가 오는데, 차분한 감정이 서서히 최고조를 향해 가는 느낌을 말한다. 그래서 안정되지 않거나 잠이 오지 않을 때 시를 몇 편 읽으면 이완되고 새로운 관점이나 통찰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다른 연구팀(막스플랑크)은 ‘왜 슬픔에 빠졌을 때 시를 찾을까’를 연구하면서 시가 “강렬한 정서적 개입을 유도해 주의 집중 상태를 유지하고, 기억 저장성을 높이는 데 유독 효과적”이란 결론을 내렸다. 최근 국내 출판 시장 불황에도 1020세대를 중심으로 시집 판매량이 상승세를 보이는 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느꼈던 이런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예술이 특히 강한 힘을 발휘하는 건 만성적이고 트라우마적인 스트레스 치료 분야다.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제출한 글을 철저히 비공개로 할 테니 한쪽 학생들은 원하는 가벼운 주제로 글쓰기를, 다른 쪽은 트라우마적 경험을 소재로 글을 써보게 한 적이 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표현해 글을 쓴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학내 보건소를 찾은 빈도가 월등하게 낮았다.
연구진은 “감정과 느낌에 언어를 부여하는 행위가 살면서 겪는 힘겨운 사건들에 맥락을 입히고 그것을 더 잘 이해하도록 신경생물학적 수준에서 돕는 것”이라고 했다. 저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트라우마의 경직된 경계들을 조금씩 밀어내는 부드러운 수단”으로서 예술이 작용했다.
저자들은 “예술과 아름다움이 건강에 생리학적 이득을 즉각 제공한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가 워낙 많아 이 책의 제목을 ‘예술 20분의 효과’라고 지을까 고민할 정도”였다고 한다. 실제 책에 따르면 신경미학의 발달 이후 의료계 종사자 등을 중심으로 예술을 ‘처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트레스에는 노래 교실을, 불안에는 미술관 방문과 콘서트 관람을, 번아웃에는 자연 속 산책과 같은 식이다.
다만 아직 학문적 깊이가 얕은 신생 학문이라 그런지, 그 연구 결과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돈된 느낌은 아니다. 고만고만한 사례가 중구난방식으로 펼쳐져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다행스러운 건 책 속 중요한 부분엔 형광펜으로 칠한 것처럼 표시가 돼 있다는 점. 바쁜 독자들에겐 훌륭한 요약본 역할을 한다.
그래도 혹시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라면, 이렇게 쓰겠다. “오늘은 미술관에 한번 가 보세요.”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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