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반대한다는 공개 의견서를 정부에 보냈다. 또 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과 함께 매주 개최하는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일명 F4 회의)에 돌연 불참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원장의 돌출 행동은 정책에 대한 의견이 다르더라도 정부 방침을 따라야 하는 공직자의 본분을 망각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그래픽=송윤혜 |
28일 금감원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에 보낸 ‘상법 개정안 관련 의견서’에서 “상법 개정안 재의 요구권을 통해 그간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비생산적이며 불필요한 사회적 에너지 소모 등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했다. 또 “상법 개정안 통과 시 우려되는 부작용은 제도적 보완을 통해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배임죄 요건을 강화하고, 특별배임죄를 폐지하고, 임원 배상책임 보험제도 등 소송 리스크 보호 장치를 정비하면 된다는 것이다.
관가에서는 “이 원장이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들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는 이미 상법이 아니라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상법 개정안은 100만여 기업의 모든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자본시장법을 고치면 2600여 상장 기업의 분할·합병 등에 적용돼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작기 때문이다. 이 원장도 야당이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전까지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직을 걸고’ 거부권 행사에 반대한다고 한 뒤 돌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요즘 이 원장이 정치를 하고 있는 건지, 금융 감독을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상법의 주무 부처인 법무부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상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이 원장이 이에 불만을 가진 것 아니겠냐”고 했다. 금감원의 상급 기관인 금융위와 기재부는 “굉장히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무부와 검찰의 의견 충돌이 생길 경우 상급 기관인 법무부를 들이받는 검찰의 행태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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