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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산불 진화… 불길보다 뜨거운 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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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만에 역대 최악 산불 잡아


조선일보

잿더미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간다 - 지난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6일 만인 28일 진화됐다. 불길이 안동, 청송, 영양, 영덕까지 번지면서 이 일대에서만 24명이 숨졌다. 이날 의성군 점곡면에서 농민들이 밭을 일구고 있다. 밭 바로 옆에 잿더미가 된 산이 보인다. /연합뉴스


역대 산불 중 가장 큰 피해를 낸 경북 의성 산불이 발생한 지 6일 만인 28일 진화됐다. 시간으로 따지면 149시간 만이다. 지난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안동, 청송, 영양, 영덕으로 번져 서울 면적의 74%에 달하는 4만5157ha를 불태웠다. 역대 가장 큰 피해를 남긴 2000년 강원 강릉·삼척 산불(2만3794ha)의 약 2배에 달한다. 앞서 지난 21일 시작된 경남 산청 산불은 8일째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날 오후 돌풍이 불어 죽어가던 불길이 다시 살아났다. 불길은 지리산 천왕봉 4.5㎞ 지점까지 번지고 있다.

임상섭 산림청장은 이날 저녁 경북 의성 현장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오늘 오후 2시 30분 영덕에 이어 오후 5시 의성과 안동, 청송, 영양의 주불을 진화했다”고 밝혔다. 주불은 산불의 진화 여부를 가르는 큰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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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할퀸 산하 - 28일 오후 경북 청송군 산림 지역은 불에 탄 잿더미였다.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휩쓸고 간 것으로 확인·추정되는 영향 구역은 총 4만5157㏊. 서울 여의도의 156배 면적, 축구장 6만3000여 개 크기였다. /장련성 기자


지난 22일 오전 11시 25분쯤 의성군 안평면에서 시작된 산불은 25일 안동과 청송, 영양을 넘어 약 78㎞ 떨어진 동해안 영덕까지 확산했다. 건조 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초속 20m 안팎의 태풍급 강풍을 타고 불길이 빠르게 번졌다. 불똥이 멀게는 1~2㎞를 날며 불을 키웠다. 예측하기 어려운 ‘도깨비 산불’이었다. 산림청은 25일 불길이 최고 시속 8.2㎞ 속도로 확산했다고 밝혔다. 산불이 사람이 뛰는 것보다 더 빨리 번졌다는 얘기다. 이는 역대 산불 중 가장 빠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24명이 숨졌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 22명과 산불을 끄던 헬기 조종사 1명, 산불 진화대원 1명이다.

사상 최악의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을 위해 따뜻한 정이 쏟아지고 있다. 기업과 금융사 등이 잇따라 성금을 기부하고 즉석밥과 생필품 등을 내놓고 있다. 연예인들도 동참했다. 시민들은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십시일반 힘을 보태고 있다.

◇단비에 기세 꺾였지만… 지리산 주불은 강풍 타고 천왕봉 위협

확산세를 이어가던 산불의 기세를 꺾은 것은 전날 내린 가랑비였다. 27일부터 이날 새벽까지 경북 의성에는 1.5㎜, 안동에는 1㎜, 청송·영덕에는 2㎜, 영양에는 3㎜ 비가 내렸다. 산림청은 “불을 끌 정도로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산불이 확산하는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산불 현장의 연기와 먼지를 줄여 이날 오전 헬기가 총력전을 벌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이날 찬 북풍이 불면서 떨어진 기온도 산불 진화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이날 의성의 낮 최고기온은 12.5도로 쌀쌀했다. 산불이 급속도로 퍼진 25일에는 낮 기온이 28도까지 올랐었다. 산림청 관계자는 “기온이 오르면 나뭇잎 등이 더 빨리 말라 불이 잘 붙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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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백형선


주불은 잡혔지만, 피해 복구에는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산불로 주택과 공장 등 건물 2412동이 불탔다. 전기나 수돗물 공급이 끊긴 곳도 속출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산불 피해가 너무 커 아직 구체적인 피해 규모는 조사조차 못 하고 있다”며 “2022년 울진 산불의 피해를 복구하는 데 약 3000억원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최소 2배 이상은 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산불을 피해 마을회관 등에 대피한 이재민은 총 3만7361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6133명은 이날까지도 대피소에 머무르고 있다. 경북도는 피해 지역 주민 27만여 명에게 1인당 30만원씩 긴급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산불은 문화유산도 집어삼켰다. 의성군의 ‘천년 고찰’ 고운사에도 산불이 덮쳐 보물인 연수전과 가운루를 잃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은 초가 지붕에 물을 뿌리며 방어선을 구축한 끝에 지켜냈다.

이번 산불로 안동시와 청송군, 영덕군은 전 주민 대피령을 내렸고 경북북부교도소(옛 청송교도소)와 안동교도소는 재소자를 다른 교도소로 이감했다. 안동 시내 초중고교 74곳은 문을 닫았다.

경남 산청에서 발생한 산불과 8일째 씨름 중인 산림 당국은 이날 지리산에서 총력전을 벌였지만 오후 들어 돌풍이 불면서 진화에 실패했다. 산림 당국은 이날 오전 헬기 43대를 동원해 지리산 국립공원 일대에 ‘물폭탄’을 쏟아부었다. 주한 미군의 치누크·블랙호크 헬기도 투입됐다. 산림 당국은 “초속 15m의 돌풍이 불면서 불티가 사방으로 날았다”고 했다. 산청에선 지난 22일 불을 끄던 진화대원 4명이 불길에 고립돼 숨졌다.

경북에서 큰불을 잡는 데 성공했지만 전문가들은 안심하기엔 이르다고 했다. 건조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낙엽 아래에 숨어 있던 잔불이 바람을 타고 언제든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산림 당국 관계자는 “4월 청명과 한식을 앞두고 산을 찾는 사람이 늘 것으로 보인다”며 “전국 산이 메마른 상태라 산불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기상청은 주말인 29~30일 전국에 초속 15m 안팎의 강한 바람이 불 것이라고 예보했다.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내려진 건조 특보는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경북경찰청은 경북 산불을 낸 혐의로 50대 성묘객 A씨를 31일 입건해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2일 오전 의성군 안평면의 산에서 성묘를 하다가 산불을 낸 혐의를 받는다.

경남 산청에서 발생한 산불은 예초기로 잡초를 제거하던 중 불티가 튀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21일부터 경북 의성, 경남 산청, 울산 울주 등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로 28명이 숨지고 39명이 다쳤다. 주택과 사찰 등 4737곳이 불탔다.

[안동=노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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