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인용돼 조기대선이 현실화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법조계에서는 이 대표가 조기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헌법 제84조에 따라 모든 재판은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항소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
선거법 재판 대법원으로…나머지 4개 재판 진행 중
선거범죄 사건 신속 처리 등에 관한 예규 제9조 제5항에 따라 선거범죄사건에 대해 항소 또는 상고가 제기된 경우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는 상급심에서 법정기간 내에 판결을 선고함에 지장이 없도록 최대한 신속히 고등법원 또는 대법원에 소송기록과 증거물 등을 송부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당선 유·무효 관련 사건의 경우는 항소장 또는 상고장 접수일로부터 3일 내 송부해야 한다.
앞서 서울고등법원 형사6-2부(부장판사 최은정 이예슬 정재오)는 지난 26일 피고인 이재명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항소심에서 1심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다만 선거법 재판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선거법의 경우 대법원은 1심은 6개월, 2심은 3개월, 상고심은 2심 선고가 이뤄진 날로부터 3개월 내에 결론을 내도록 강행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 2심 선고는 지난해 11월 15일 1심 선고가 있은 지 4개월11일 만에 나온 만큼 대법원 판단도 3개월 규정을 넘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선거법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음에도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 대표는 △위증교사 사건 △대장동·백현동·위례동·성남FC 사건(배임·뇌물 등 혐의) △쌍방울(102280) 대북송금 사건 △경기도 법인카드 등 유용 사건 재판을 앞두고 있다. 항소심과 상고심까지 포함하면 총 5개 재판 중 12번의 선고가 남아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위증교사 사건은 지난해 11월 2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이승한) 심리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거짓 증언하게 하려는 고의가 이 대표에게 없었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가운데 2심은 내달 1일 2차 공판준비기일을 앞두고 있다.
이 외에 대장동·백현동·위례동·성남FC 사건 재판은 지난달 법관 정기인사로 재판부가 교체되면서 공판 갱신 절차를 밟고 있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은 3차례 공판준비기일을 열었지만 지난해 12월 이 대표 측이 법관 기피신청을 제출하면서 재판이 중단된 상태다. 최근 법원이 이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린 만큼 조만간 재판이 재개될 전망이다. ‘법인카드 등 예산 유용’ 사건은 다음 달 8일 첫 공판준비기일을 앞두고 있다.
조기대선시 이 대표 재판 제동 불가피
문제는 조기대선에 따른 변수다. 헌법재판소가 오는 4월 중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치권은 탄핵이 인용될 것을 염두에 두고 이미 조기대선 국면에 접어들었다. 만약 헌재에서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고 조기대선이 현실화할 경우 이 대표 관련 재판은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실제 이 대표는 대장동 민간 사업자들의 배임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 요구를 받았지만 지난 21일, 24일에 이어 이날까지 세번째 불출석했다. 지난 2021년 12월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이 사건 재판은 ‘최종 결재권자’로 지목된 이 대표와 정진상 전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증인신문 등만을 남겨놓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정치 일정을 핑계로 연속 불출석하면서 법원은 지난 24일 과태료 300만원을 처분한 것에 이어 이날 과태료 500만원을 추가 처분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대표가 조기대선 주자가 되는 순간 사실상 모든 재판은 중단되거나 진척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부장판사는 “아무리 피고인 신분이라 해도 조기대선 국면에 접어들면 두달 남짓밖에 없는 시간에 제1야당의 대권 주자로서 선거 운동을 한다는 명분으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 어느 재판부라도 한두번은 받아주게 될 것”이라며 “재판 계획을 아무리 촘촘하게 잡아도 재판부마다 여러 사건을 다루는 만큼 이 대표 사건만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만약 조기대선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될 경우에도 재판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불소추특권이 ‘진행 중이던 재판’에도 적용되는지 여부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해석을 두고 의견이 나뉘지만 현실적으로 현직 대통령이 재판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란·외환 등 국가부정행위는 처벌할 수 있더라도 그렇지 않은 범죄는 임기 끝난 다음에 처리하라는 게 헌법 84조의 취지”라며 “대통령이라는 공직이 갖는 공익성, 공공성 관점에 비춰봐도 불소추특권을 두는 취지 자체가 공직 수행에 있어 형사 소추로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란 측면에서 진행 중인 재판을 정지하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정태호 경희대 법전원 교수는 “헌법 84조는 문제되는 범죄가 재직 전인지 재직 후인지를 불문하기 때문에 대통령직 수행 후에 재판을 받아도 무방하다”며 “이미 소추된 사람이라 해도 대통령이 됐으면, 국민의 심판과 선택을 이미 받았다면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선출된 권력을 법원이 판단하기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