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 산불을 피해 멸종위기 동물들을 이송하고 있다. 사진은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 본원으로 옮겨진 참수리. 국립생태원 제공 |
지난 25일 오전 9시 30분 경북 영양군의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주요 간부들이 모인 가운데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22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센터 인근 지역까지 불길이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국내 최대 규모의 멸종위기 야생생물 시설로 한반도에서 사라졌거나 얼마 남지 않은 동·식물들을 복원하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센터는 산불로부터 멸종위기종들을 지키기 위해 산불 확산 반대 방향에 있는 지역으로 대피시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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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는 서천, 어류·양서류는 울진 대피
이송은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멸종위기 Ⅰ급으로 지정된 먹황새와 참수리는 충남 서천에 있는 국립생태원 본원으로 옮겨졌다. 멸종위기 Ⅱ급 조류인 양비둘기도 같은 곳으로 이송됐다.
멸종위기 어류 5종과 양서류인 금개구리, 파충류인 남생이는 울진에 있는 경북도민물고기연구센터로 대피했다. 만년콩 등 희귀 식물들의 경우 화재를 피할 수 있는 센터 내 지하 창고로 옮겼다. 센터는 27일 멸종위기 동식물 28종, 4900여 개체에 대한 대피 조치를 완료했다고 했다.
28일 오전 지리산국립공원 인근 산청군 삼장면 일대에서 헬기가 산불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리산국립공원은 멸종위기 반달가슴곰의 서식지다. 뉴스1 |
정길상 멸종위기복원센터 복원연구실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멸종위기 동식물들을 여기보다 안전한 곳으로 모두 보내 놓은 상태”라며 “연구진이 현장으로 같이 출동해 직접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초대형 산불은 센터 인근 수 킬로미터까지 접근했지만, 다행히 불길이 잡히면서 센터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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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슴곰·산양, 산불 지역서 서식
동물보호단체에서 산불 속에 방치된 개를 구조하는 모습. 케이케이나인 레스큐 제공 |
문제는 야생에 서식 중인 멸종위기 동물들이다. 역대 가장 큰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 북부 지역은 멸종위기Ⅰ급 산양 등 여러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경남 산청에서 시작된 산불이 번진 지리산국립공원은 멸종위기 반달가슴곰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80마리가 넘는 반달곰이 서식 중이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반달가슴곰의 활동 영역이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과 중첩돼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경북 산악 지대 역시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 울타리가 산양 등 야생동물들의 이동을 방해하고 있어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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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속 남겨진 반려동물 구조
한편, 대형 산불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는 반려동물들에 대한 구조의 손길도 이어졌다. 동물자유연대와 케이케이나인 레스큐 등 동물보호단체들은 주민들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목줄에 묶여 산불 속에 홀로 남겨진 개들을 잇달아 구조했다. 이재민 대피소 인근에 반려동물을 위한 임시보호소도 구축했다.
김현유 케이케이나인 레스큐 대표는 “도로에 쓰러져 있는 개와 배에 화상을 입은 마당개 등 수십 마리를 구조했다”며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할 수 있는 장소나 체계가 없다 보니 피해가 컸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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