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이하 대통령실)이 비공개한 대통령실 조직도와 직원 명단을 대통령기록관은 이미 '공개 대상' 정보로 분류해 모든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직원 명단을 비공개하고 있는 대통령실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증거가 추가로 확인된 것이다. 앞서 대법원은 대통령실을 상대로 '전체 직원 명단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대통령실은 오히려 직원 명단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해 최장 30년간 비공개 처리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대통령기록관이 공개한 '노무현·이명박 직원 명단'... 윤석열 대통령실은 은폐
최근 뉴스타파는 대통령실의 '직원 명단 비공개' 실태를 보도했다.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인 지난 3월 14일 대통령실은 뉴스타파가 정보공개청구한 직원 명단에 대해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 대상으로 현재 관련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며 전체 직원 443명 중 비서관급 이상 53명의 명단만 임의로 공개했다. 대법원 확정판결 취지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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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대법원 판결 무시하고 '직원 명단' 숨긴 윤석열 대통령실 (2025.3.7)
대통령실의 이러한 비공개 처분은 법적 근거가 없는 위법한 처분이며, 대통령기록관의 결정과도 완전히 배치된다.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실에서 생산·접수한 대통령기록물을 수집·보존·관리하는 국가기관이다. 대통령실이 생산한 기록물은 대통령 임기 종료와 함께 대통령기록관으로 전부 이관된다.
지난 14일, 뉴스타파는 대통령기록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노무현·이명박 정부 당시 생산된 청와대 직원 명단과 내부 조직도를 입수했다. 이 중 이명박 정부 시기 생산된 '대통령실 조직도 현황, 직급별 정원' 자료를 보면, 2010년 6월 14일 기준 대통령실 전체 직원의 이름과 소속 부서, 조직 계통이 나와 있다. (아래 사진 참고)
또 이명박 정부 당시 생산된 청와대 선임행정관급 이상의 직원 명단을 보면, 2010년 6월 18일 기준 각 부서별 △실장 △수석비서관 △비서관 △선임행정관 등 80명의 이름과 임용 일자, 채용 형태가 적혀 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실은 비서관급 이상 직원 53명의 이름만 공개했을 뿐, 선임행정관들의 이름과 소속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아래 사진 참고)
노무현 정부는 어땠을까. 대통령기록관이 공개한 2007년 4월 25일 기준 "대통령비서실 조직도" 자료엔 소속 선임행정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임용 일자는 물론, 출신 학교와 주요 경력까지 적혀 있는 게 눈에 띈다. (아래 사진 참고)
이렇듯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실의 직원 명단과 조직도가 공개된 배경에는 대통령기록관의 '재분류' 결정이 있었다. 앞서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실은 직원 명단을 '비공개 대통령기록물'로 분류해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했다. 하지만 대통령기록관은 2019년 7월 3일, 당초 비공개였던 명단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2가지 측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실의 이번 비공개 처분과 대비된다. 첫째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직원 명단을 '비공개 기록물'로 분류했을뿐,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하지 않았다.
비공개 기록물은 비공개 시한이 5년으로 그 이후에는 공개 기록물로 재분류, 즉 전환이 가능하다.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고 5년이 지나면 대통령기록관은 공개 여부를 재분류하고, 또 이후 매 2년마다 주기적으로 공개 여부를 판단한다.
심성보 전 대통령기록관장은 "(공개 재분류는) 대통령실에서 비공개 대통령기록물을 자의적으로 정할 수 있으니 사후적으로 방지하자는 차원도 있다"며 "시간이 흘러 이제는 비공개할 사유가 소멸했거나 아니면 애초에 잘못 비공개로 분류했다고 판단한 기록물은 공개로 돌려놓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통령지정기록물은 최장 30년까지 보호기간을 정해 비공개할 수 있다. 보호기간 동안 대통령기록관이 공개 여부를 다시 판단하는 절차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실은 출범 직후부터 대통령의 친인척과 지인의 아들, 김건희 여사가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 등을 뽑으며 '사적 채용' 의혹에 시달렸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대통령기록물법의 목적은 국정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것인데, 제도를 악용해 대통령에게 불리한 정보를 감추고 있다"며 "동일한 자료임에도 정권에 따라 대통령지정기록물 여부가 달라진다는 것 자체가 지정기록물 제도가 객관적 기준 없이 정권의 자의적 판단에 의존해 운영된다는 걸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대통령기록관, 대통령실 직원 명단은 '공개 정보'라 판단
둘째로 대통령기록관은 이미 2019년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실의 직원 명단을 공개 대상으로 재분류해 '대통령실 직원 명단은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립했다.
비공개 대통령기록물의 공개 재분류는 대통령기록과뿐 아니라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의 심의를 거쳐 이뤄진다. 전문위는 정보공개 관련 전문성이 있다고 평가받는 법조인·교수 등으로 구성된다. 전문위에서 2018년~2021년까지 위원을 지낸 조영삼 전 서울기록원장은 "먼저 대통령기록관이 재분류 대상이 된 비공개 기록물을 보내오면, 전문위는 기록물 목록을 먼저 보고 '이건 비공개로 분류할 게 아닌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면 직접 기록물을 본 뒤 심의해 공개 여부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공개 재분류 절차에 따라,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실의 직원 명단은 당초 비공개에서 공개로 바로 잡혔다.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실 직원 명단의 공개 재분류'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용혜인 의원실의 질의에 "비공개 대상 정보가 없기 때문에 공개로 재분류했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실은 직원 명단을 최장 30년 동안 공개가 불가능한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해 대통령기록관으로 넘기려 하고 있다.
대법원 확정판결에 더해, 대통령기록관의 정보 공개로 윤석열 대통령실이 직원 명단을 비공개할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사실이 재차 확인됐다. 하지만 대통령기록물법상 지정기록물 지정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대통령(혹은 권한대행)이 직원 명단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해 넘기면, 대통령기록관은 이를 수용하는 수밖에 없고, 보호기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 비공개해야 한다.
결국 대통령의 '무분별한' 지정기록물 지정을 막기 위해선 대통령기록물법이 개정돼야 한다. 용혜인 의원이 현재 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해당 개정안에 따르면,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은 '전문위 심의'를 거쳐야 한다. 대통령이 본인이나 가족, 측근의 비위와 관련된 기록물까지 마음대로 지정기록물로 봉인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또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인 기록물이 있다면,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하는 절차가 중단된다.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온 후에야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할 수 있다. 대통령실이 대통령 임기 종료를 앞두고, 소송 대상인 기록물을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함으로써 외부 공개를 막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마지막으로 개정안은 정보공개 행정소송이 제기된 대통령기록물에 대해 소송 기간 중 비공개로 분류하거나 지정기록물로 지정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는다. 아울러 소송 기간 중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된 경우에는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장(국가기록원장)이 비공개 분류 및 지정기록물 지정을 관장하도록 했다. 윤석열 대통령실처럼, 직원 명단 공개 행정소송에서 최종 패소가 확실시되자 지정기록물 절차를 시작하는 '꼼수'를 막자는 취지다.
용혜인 의원은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에 대한 악용을 막으려면 지정기록물 지정에 대한 심의 절차를 도입하고, 정보공개 소송의 대상이 된 기록물의 이관을 제한하는 등 법의 사각지대를 보완해야 한다"며 "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기록물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 알권리도 보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