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유지해왔던 삼성전자는 최근 안팎으로 크게 낙담하는 분위기다. 지난 19일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임원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에 세계 1~2위를 다투던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말이 계속되고 있다. 오랜 시간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의 점유율을 자랑해왔지만 더 이상 메모리 반도체에 안주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쓴소리들이 ‘공허한 외침’일 수 있다고 반박한다. 도대체 무엇이 위기이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모른 채 비판만 쏟아내는 이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비메모리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 저자는 "이 세상에 비메모리라는 반도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반도체 시장 전체에서 약 23%를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 이외의 모든 반도체를 ‘비메모리’라고 지칭하는 것은 모호하다는 뜻이다. 반도체의 종류에는 메모리를 비롯해 개별 반도체, 광학, 센서, 아날로그, 로직 IC, 마이크로프로세서 등이 있다. 메모리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른 반도체에 대한 경쟁력도 높이자는 말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비메모리에 대한 오해를 풀고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더욱 구체적인 방향과 실행 전략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주요 소재, 장비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아 취약한 공급망 구조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전체 수출 품목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기준 13%를 웃돈다. 미·중 패권전쟁 등 격화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외부 영향에 취약할 수 있는 구조다. 특히 품목별로도 중화권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상태다. 저자는 한국 반도체가 10년 후에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정 지역, 국가, 품목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개별 품목의 가격이 기업과 국가 전체의 운명을 뒤흔들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반도체와 산업 분석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그는 우리 산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구체적인 방향성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반도체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는 단순한 기술 서적을 넘어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오해와 지정학적인 배경, 국제 정세까지 예리하게 해부하며 반도체 산업이 어떻게 경제, 외교, 안보와 맞물려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의 현실을 직시하고 더 넓은 시야를 갖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반도체를 둘러싼 패권 전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그 안에서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반도체 패권전쟁 | 이주완 지음 | 이든하우스 | 280쪽 | 20000원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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