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당국 집행관들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 보스턴의 한 길가에서 튀르키예 출신 박사과정생 뤼메이사 외즈튀르크(하얀색 옷)를 체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사복 차림의 이민당국 집행관을 동원해 이스라엘의 대량학살 행위를 비판한 튀르키예 유학생을 붙잡아갔다. 트럼프 정부가 반전을 지지하는 이민·유학 대학생을 향해 압박을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은 채 학생들을 강제구금하는 행위가 인권침해인 데다 위법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27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 보스턴의 한 길가에서 사복 차림의 이민 당국 직원들이 튀르키예 출신 박사과정생 뤼메이사 외즈튀르크(30)를 체포하는 과정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입수해 보도했다.
지난 25일 찍힌 영상을 보면 후드티를 입고 캡모자를 쓴 한 남성이 길을 걸어가던 외즈튀르크를 잡아 세우고 그의 팔을 붙잡는다. 이어 캡모자, 선글라스, 마스크를 각각 착용한 이민당국 직원 5명이 외즈튀르크를 둘러싼다. 이들은 모두 사복을 입고 있었고, 일부 직원만 이민세관단속국(ICE) 배지를 목에 걸고 있었다. 집행관들은 외즈튀르크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끌고 갔다.
라이 교수는 일부 집행관들이 얼굴을 가린 것을 두고 “누가, 왜 데려가는지 알리지 않은 채 연행했다는 느낌을 주며,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보스턴 소재 터프츠대 소속인 이 학생은 학생 비자로 입국해 아동연구·인간발달학을 전공한 풀브라이트 장학생이라고 그의 변호사 마흐사 칸바바는 밝혔다. 풀브라이트는 미 대학원 유학을 지원하는 미 국무부의 장학 제도다. 칸바바 변호사는 외즈튀르크는 어떤 범죄 혐의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루이지애나주의 한 수용시설에 구금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토안보부는 “외즈튀르크가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정파)를 지원하는 활동에 관여했다”며 그의 비자가 취소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고 WP는 전했다.
외즈튀르크는 지난해 3월 학보에 반전시위 관련 칼럼을 썼다. 4명이 공동으로 작성한 이 글에서 저자들은 ‘가자지구에서 대량학살이 벌어지고 있음을 인정하라’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의 학생회 평의회 결의를 수닐 쿠마르 터프츠대 총장이 지지할 것을 촉구했다.
외즈튀르크의 체포 소식이 알려지자 터프츠대 인근에선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지역지 보스턴글로브는 지난 26일 이 집회에 학생과 무슬림 단체 회원 등 약 2000명이 참석한 것으로 집계했다.
시민들이 지난 26일(현지시간) 이민당국에 체포된 튀르키예 박사과정생 뤼메이사 외즈튀르크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매사추세츠 서머빌에서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
무슬림단체인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 매사추세츠지부 임원 타히라 아마툴와두드는 “대낮에 가면을 쓴 연방 요원들이 히잡을 쓴 젊은 무슬림 학자를 납치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무슬림공보위원회는 “이 체포는 소름돋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스티븐 린치 하원의원(민주당)은 엑스(옛 트위터)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면서 미 대학에 재학 중인 유학생을 거리에서 납치해 심리 절차도 없이 1700마일 떨어진 ICE 구금시설로 끌고 간 것은 역겨운 게슈타포(독일 나치 정치경찰)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전 지지 학생에 대한 추방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남미 가이아나를 순방 중인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대학가 반전 시위에 연루돼 비자가 취소된 사람 수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마도 300명 넘을지 모른다”며 “미치광이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비자를 취소할 것”이라고 답했다. 루비오 장관은 “세계 모든 나라는 누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거부할지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있다”며 “대학을 파손하고, 학생을 괴롭히고, 건물을 점거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자를 내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WP는 외즈튀르크가 이번달 정부의 중동 갈등 관련 단속에 연루된 일곱 번째 학생·연구자라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8일 컬럼비아대 대학원생 마흐무드 칼릴을 체포한 것을 시작으로 같은 대학 한인 학생 정모씨(21)의 영주권을 박탈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주3일 10분 뉴스 완전 정복! 내 메일함에 점선면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