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시작된 경상권 산불 사태가 일주일을 넘어가면서 이재민들의 삶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대부분 고령자들인 이재민들은 당장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사진은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대피해 있는 영덕군 영덕읍 영덕국민체육센터로 한 주민이 들어가고 있는 모습 영덕=이상섭 기자 |
지난 21일 시작된 경상권 산불 사태는 하루 아침에 소중한 가족을 잃게 했고, 삶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곳곳에서 절규가 터졌다. 하루 아침에 집을 잃은 이재민들은 당장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막막해 했다. 대부분 고령자인데 돌아갈 집은 없고 부랴부랴 대피하느라 필요한 물품도 챙겨나오지 못했다. 그들은 대피소의 찬바닥에 덩그러니 누워 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산불 현장의 진화대원, 현장 의료진 등의 장비 부족과 극심한 피로 누적도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28일 찾은 경북 영덕군 영덕읍 영덕국민체육센터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25일 밤 영덕에 밀려온 산불에 집을 버리고 탈출한 주민 452명이 여전히 머무르고 있다. 갑자기 닥친 화마로 간신히 몸만 피해 온 이재민들은 담요 하나에 의지해 누워 있는 처지다.
송씨는 “우리 영덕에 관심이 덜 한 것 같다. 뉴스를 보면 다른 지역은 진화나 이재민 지원 등이 신속한 것 같던데 속상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누울 자리가 없어 간신히 머리만 기대 쉬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김모(60) 씨는 찬바닥에 앉아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한숨 돌리고 있었다. 김씨는 “두통이 오는데 누울 곳이 없어서 의자에 머리를 대고 있다”고 토로했다.
아예 대피소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안동시의 안동시민운동장으로 대피했다는 네 아이 엄마 권모(37) 씨는 이날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새벽 내내 차 안에서 아이들을 다독였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권씨는 “대피해 와서 보니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몰린 것 같았다. 자리가 없어서 새벽 내내 차에 있었다”며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줄이 너무 길었다”고 토로했다.
권씨 가족은 제대로 의료진을 만날 수도 없었다. 권씨는 “대피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셨다”며 “차 안에서 애들이랑 같이 봉지에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대피소의 물자와 인력은 ‘태부족’인 상황이었다. 현장 공무원들과 의료진은 당장 생활물자부터 의료용품, 위생용품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또 적은 인력 여건으로 인해 12시간씩 근무하고 있다.
현장의 영덕군 보건소 관계자들은 12시간씩 2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현장의 한 의료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한다”며 “며칠 지속되다보니 피로도가 심한 상황이다”고 했다.
의료용품이나 위생용품도 부족한 상황이다. 영덕군 보건소 관계자 A씨는 “거동이 어려운 고령 환자가 많다. 특히 소변 처리가 어려운 고령 환자는 기저귀가 필요한데 보건소 비축분을 다 쓰고 있다”며 “곧 다 떨어질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대피소의 이재민뿐 아니라 생사가 오가는 산불 현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산불 진화 현장에 일주일째 분투하고 있는 산림청 관계자는 “일주일째 현장에서 버티다 보니 정신이 또렷하지도 않다”며 “현장 대원들은 잠도 거의 못 자고 버티고 있다. 불을 두고 갈 수 없으니 간신히 버티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장비와 인력 지원뿐 아니라 정신적 지원도 필요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특히 현장 대응 인력들에 대한 트라우마 관리가 필요하다”며 “현재 대응 인력 가운데서도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 대응인력이면서도 재난 피해자인 상황인데 인력들에 대한 심리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재난은 특히 사상자가 많아서 통상적인 이재민에 대한 심리 지원보다 사회적 재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영기 기자·영덕=김도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