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주멕시코북한대사관의 각종 활동 내용이 담긴 외교문서
오늘(28일) 외교부가 공개한 '1994년 외교문서'를 보면 그해 7월 8일 북한을 46년 장기 통치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직후 각국의 움직임이 잘 드러납니다.
해외 공관들이 일제히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한 한국은 물론 세계 각국은 김 주석의 사망 원인부터 후계 구도에 이르기까지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북한의 미래를 점치려 애썼습니다.
미국 당국자들은 김정일과 그의 정책 방향에 대해 비판적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당시 스탠리 로스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보좌관은 반기문 주미대사관 공사와 면담에서 "김정일이 승계에 성공하더라도 김일성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정통성이 결여돼있는 데다, 경제난 계속으로 일정 기간 이후 많은 도전을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김정일이 핵문제와 관련해 강경파라는 가정이 사실이고 이에 따라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서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미 부통령을 지냈던 월터 먼데일 주일미국대사는 김정일에 대해 "약간 멍청하고(GOOFY) 어린애 같아(CHILDISH) 지도자로는 부족한 것 같다"며 혹평하기도 했습니다.
한승수 주미대사 보고를 보면 당시 미 국무부는 "김일성 정책의 계속성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 반면, 중앙정보국(CIA)은 김정일의 '과격성'과 '불가측성'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개혁개방 흐름 속에 북한과 일정 수준 거리를 뒀던 러시아 당국자들도 북한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예상했습니다.
평양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러시아 학자는 "김정일 체제가 6개월 정도 지나면 군부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개입할 것"이라며 "길어야 김정일은 96년 말 정도까지만 집권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김정일의 건강 상태에 대한 관심도 꾸준했습니다.
주카이로 총영사는 그해 연말 보고에서 이집트 당국자가 "(김정일의) 업무 수행 능력이 의심된다"며 "그의 오른쪽 옆머리에 수술을 받은 긴 자국이 있음을 발견했다"고 언급했다고 전했습니다.
반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김정일 체제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는데, 덩샤오핑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한문제를 담당하는 중국 외교부 인사는 "김일성은 과거 중국 방문 시 덩샤오핑에게 아들 김정일 문제를 부탁(托孤·탁고)해 두었기 때문에, 덩샤오핑이 생존해 있는 한 중국 정부는 그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북한이 공식적으로 밝힌 김일성 사망 원인은 '심근경색'과 '심장쇼크' 였는데, 중국 일부 당국자들은 핵문제 및 남북 정상회담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심장에 무리가 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최고지도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각국 소재 북한대사관의 혼란스러운 모습도 외교문서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주베트남 북한대사관은 베트남 한 언론사가 김일성 사망 이튿날 관련 소식을 보도하자 '터무니없는 날조'라며 항의했습니다.
이 매체가 해당 소식을 전하는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의 기사를 내밀고서야 상황은 진정됐습니다.
멕시코에서는 외교부가 북한대사관이 조문록을 설치했다는 내용의 공한(공적 서한)을 직접 외교단에 발송하면서, 우리 대사관이 해명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멕시코 외교부는 "북한 대사가 급히 의전실을 방문해 '대사관에 인력과 복사기가 없으니 공한 발송을 도와달라'고 요청해 담당 직원이 부주의하게 응한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당시 김찬식 주멕시코북한대사는 멕시코 측에 대통령 조전 발송을 집요하게 요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멕시코 당국자는 "조전이 발송되지 않을 경우 대사직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의 절박한 상황임을 짐작하게 했다"고 우리측에 전했습니다.
(사진=외교부 제공, 연합뉴스)
최재영 기자 stillyoung@sbs.co.kr
▶ 네이버에서 S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가장 확실한 SBS 제보 [클릭!]
* 제보하기: sbs8news@sbs.co.kr /02-2113-6000 /카카오톡 @SBS제보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