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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일 '여성 빙하학자' …자연이 묻어둔 '냉동 타임캡슐'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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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빙하 곁에 머물기 l 신진화 지음, 글항아리, 1만8000원


빙하를 이용해 옛 기후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는 연구 분야에는 탄생 설화, 아니 실화가 있다. 1965년, 빙하를 시추하러 남극에 가 있었던 프랑스 학자 클로드 로리우스는 어느 날 위스키에 탈 얼음이 떨어지자 빙하를 조금 떼어서 술잔에 넣었다. 그러자 마치 샴페인을 따른 것처럼 그 얼음 조각에서 공기 방울이 톡톡 터져 나왔다. 혹 빙하가 형성된 시절의 공기가 그 속에 갇혀 있는 걸까? 그는 빙하 속 기체를 모아서 조사한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빙하학 중에서도 이산화탄소 연구의 시작이었다.



‘빙하 곁에 머물기’를 쓴 신진화 박사는 바로 그 연구를 한다. 우리나라에 이 분야 전문가는 대여섯명뿐이고, 현업 연구자 중 여성은 그가 유일하다. 이 책에서 그는 빙하학을 소개하고, 그린란드로 날아가서 시추에 참여한 체험담을 통해 빙하학자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들려준다.



빙하는 ‘냉동 타임캡슐’이다. 눈이 차곡차곡 쌓이고 얼어서 빙하가 되는 과정에서 그때 내린 눈비뿐 아니라 대기도 포집되므로, 그것을 분석하면 당시 대기 중 기체들의 농도를 알 수 있다. 그중 이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온실가스들의 농도는 당시 기온을 유추하는 단서다. 또한 그 대기에 떠돌았던 먼지, 해염, 에어로졸도 함께 보존되므로 화산 활동 같은 여타 환경 사건도 추측할 수 있다. 얼음과 눈 자체의 동위원소를 분석하는 방법도 있다. 별빛이 우주 역사를 담은 타임캡슐이듯이 빙하는 지구 대기와 환경 역사를 담은 기록물이다.



옛 기후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물론 빙하만은 아니다. 가령 과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나뭇잎 화석의 기공 수, 해양 퇴적물 속 유공충의 동위원소로도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간접 추정이고, 직접 측정 방법은 빙하를 이용하는 것뿐이다. 단, 빙하를 통해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최대 과거 시점은 80만년 전까지다. 빙하가 존재한 기간이 46억년 지구 역사에 비하면 짧은 데다가, 현재 알맞은 시료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제한된 탓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옛 기후를 토대로 미래 기후를 예측하는 것이라면, 현재 환경과 유사했던 지난 80만 년의 데이터는 가장 유용하다.



그런데 빙하학자라니, 저자는 어쩌다 이렇게 특별한 직업을 갖게 되었을까? 그 개인적 이야기가 빙하의 이야기 못지않게 흥미롭다. 학생 때부터 지구과학 과목이 좋았다는 저자는 대학에서 지질학을 배운 뒤 무관한 곳에 취직했다가 지구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를 잊지 못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남극 빙하 코어로 17만~13만 년 전 이산화탄소 농도를 복원하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한국극지연구소에서 일한다.



밖에서 보면 멋지기만 한데,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그는 남극 빙하로 연구하는데도 아직 남극에 가보지 못했다. 남극에 우리나라 기지가 있긴 하나, 자원이 많이 드는 기초과학 연구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진행할 수 없다. 더구나 그는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계약직 노동자다. 언제 이 일을 그만둬야 한대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 ‘빙하 곁에 머물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이뤄지려면 일단 그가 연구자로 살길을 찾아야 하고, 나아가 유례없이 빠르게 녹고 있는 빙하가 기후위기를 견디고 살아남아야 한다. 이것은 너무 슬픈 소망인데, 그의 애정과 이 책은 너무 아름답다.



한겨레

김명남 과학책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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