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온홀딩
미국 증시 하락세가 심상찮다. 그간 랠리를 이끌던 기술주뿐 아니라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로 소비재 역시 큰 폭의 조정을 받고 있다. 트럼프발 관세 정책 불확실성의 여파다. 하지만 소비재 중에서도 관심을 끄는 종목은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이 연이어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한 온홀딩(ONON)이 대표적이다. 러닝화 브랜드 ‘온러닝’을 전개하는 업체다. 3월 19일 기준 주가는 47달러로 1년 전과 비교하면 40% 상승했다. 글로벌 IB는 추가 상승을 내다본다. 바클레이즈는 최근 온홀딩 목표주가를 64달러로 제시했고 HSBC도 기존 52달러에서 58달러까지 눈높이를 높였다. 당초 65달러를 제시했던 UBS는 73달러로 목표주가를 상향했다.
트라이애슬론 챔피언이 설립
온홀딩(온러닝)은 한 운동 선수의 고민에서 설립됐다. 창업자인 스위스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세계 챔피언 올리비에 베른하르트다. 선수 시절 만성 아킬레스건 염증으로 고생한 베른하르트는 은퇴 이후 발이 편한 러닝화 개발을 목표로 파트너 카스파 코페티, 데이비드 알레만과 손잡고 2010년 온러닝 전개를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제품이 ‘온 클라우드 몬스터’ ‘온 클라우드 울트라’ 등이다. 모두 ‘클라우드’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온러닝의 특허 쿠셔닝 기술 ‘클라우드 테크’ 적용을 강조하기 위한 작명이다.
온러닝 측은 “밑창에 달린 여러 개 공기주머니가 충격을 흡수해 부드러운 착지가 가능하고 반발력도 강해 러닝에 도움을 준다”고 설명한다.
온러닝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운동 브랜드 중 하나다. 2019년 매출은 2억6700만스위스프랑, 원화로 4300억원 수준이었다. 지난해 매출은 23억1800만스위스프랑(약 3조8000억원)이다. 5년 만에 10배 가까운 성장을 이뤄냈다. 수익성도 확실하게 챙겼다. 지난해 에비타(상각 전 영업이익)는 3억8800만스위스프랑(약 63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에비타 이익률(매출 대비 에비타 비중)은 16.7%에 달한다.
단순히 기술력만으로 이뤄낸 결과는 아니다. 전 세계적인 러닝 붐이 일면서 가능했던 결과다. 최근 국내 러너들 사이에선 뛰는 것보다 마라톤 대회 참가를 신청하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선착순으로 진행되다 보니 ‘피켓팅(피 터지게 치열한 티케팅)’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온라인 신청에 어색한 40대와 50대 참가자들이 “젊은 층과 경쟁해 참가 신청에 성공할 방법이 없다”며 대회 주최 측에 선착순이 아닌 ‘추첨제’로 참가 방식 변경을 강력하게 요구할 정도다. 유독 한국만 러닝에 푹 빠진 것이 아니다. 해외로 눈을 돌려도 똑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2025년 영국 런던 마라톤 대회 참가 신청자 수는 90만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4월 열린 대회 참가 신청자 수(58만명) 대비 약 2배 늘어난 숫자다.
관련 업계는 당분간 러닝 붐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역사적으로 러닝은 경기 불황기에 주목받았다. 1970년대 미국을 강타한 ‘아메리카 러닝 붐’이 대표적이다. 제1차 석유 파동과 인플레이션 등이 겹친 1970년대 초반은 미국의 혹독한 경제 불황기였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1979년 ‘The Runner Phenomenon Of the 70s’ 제목의 기사를 통해 1970년대 미국 러닝 붐을 정리한다. 워싱턴포스트는 당시 뉴욕 로드 러너스 클럽 회장 인터뷰를 인용하며 “소방관, 우편배달부, 비서가 러닝을 시작하며 열풍이 불었다”고 분석했다. 쉽게 말해 골프나 테니스 등 기존 운동과 달리 비용 부담이 적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1970년대 러닝 붐의 이유라는 의미다. 당시와 현재 글로벌 경기 불황에 비슷한 부분이 많다.
온러닝 주요 제품을 신고 뛰는 러너들의 모습(위). 온러닝 파리 매장 전경(아래). (온홀딩 제공) |
러닝 안 해도 ‘패션 아이템’ 소비
컬래버 모델은 3배 리셀 붙기도
최근엔 러닝을 즐기는 이들뿐 아니라 일상화나 패션화로 온러닝을 신는 경우도 많아졌다. 러닝 인기가 패션 업계로 번진 것.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는 많았다. 대표적인 게 코로나19 기간 등산 인기가 커지자 패션 업계를 강타한 ‘고프코어’ 붐이다. 등산을 기반으로 한 패션이다. 아크테릭스와 살로몬 등 고프코어 브랜드가 인기를 끌었다. 이후 여성 풋살 등이 주목받으면서는 ‘블록코어’가 떠올랐다. 축구·럭비 유니폼 등을 일상복으로 입는 패션이다. 이를 이어받은 게 러닝코어다. 러닝코어 중심에 서 있는 브랜드가 온러닝이다. 러닝을 즐기지 않는 이들 사이에서도 온러닝은 ‘힙한 패션 아이템’으로 소비된다. 패션 유통 업계 종사자 A씨는 “어글리 슈즈와 일반적인 운동화 사이 애매한 포지션을 원하는 이들이 온러닝을 찾는다”며 “과거 뉴발란스와 나이키 정도 선택지가 대중적이었다면, 최근엔 패션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온러닝도 선택지에 포함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실제 리셀(재판매) 시장에서 온러닝 인기는 상당하다. 특히 타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 모델은 부르는 게 값이다. 발매가 대비 3배 이상 리셀가가 붙은 모델도 있다. 온러닝과 국내 패션 브랜드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파프)이 협업한 ‘온러닝×파프 클라우드몬스터2 문더스트 초크’는 지난 3월 8일 국내 리셀 플랫폼 크림에서 89만9000원에 판매됐다. 이후에도 80만원대 거래가 줄을 잇는다. 지난해 5월 발매 당시 가격(27만9000원)보다 200% 이상 비싸다. 온러닝과 스페인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가 협업한 ‘로에베×온러닝 클라우드틸트 2.0’ 모델은 최근 90만원에 거래됐다. 발매가는 65만원이다.
“올해도 매출 증가율 30%”
중국 시장 공략 본격화
온러닝이 밝힌 올해 가이던스도 긍정적이다. 3월 4일 실적 설명회에서 온러닝은 올해 1분기 30%대 중반의 매출 증가를 내다봤다. 그러면서 올해 하반기는 1분기 대비 저조하겠지만 20%대 매출 증가율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데이비드 알레만 온홀딩 공동창업자는 “이번 가이던스는 매우 신중한 수치”라며 “전 세계적 경제 불확실성을 고려한 가이던스”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20~30%대 매출 증가도 보수적으로 판단한 값이라는 의미다. 데이비드 알레만은 “선주문 물량을 고려하면 실제 성장률은 가이던스를 웃돌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2026년까지 매출을 2배 늘리겠다는 중장기 목표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아시아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심산이다. 특히 중국 매장 수를 크게 늘릴 계획이다. 지난해 말 기준 58개인 중국 내 매장 수를 2026년 80개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올해 중국 청두와 선전에 플래그십 매장도 연다. 데이비드 알레만은 “판매 지점을 늘려 더 많은 중국 소비자 수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다”며 “중국에서 확실한 성장 궤도에 올라 있다는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일본 등 중국 외 아시아 시장 공략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온러닝은 지난해 11월 한국 시장에 공식 진출해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첫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아직 공식 판매점은 없다. 데이비드 알레만은 “올해 생산 물량을 늘려 한국 시장 등에서 보다 적극적인 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2호 (2025.03.26~2025.04.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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