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낙후된 조선산업의 부활을 이끌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한화오션을 보유한 한화그룹 측이 미국 싱크탱크 행사에서 미 정부와의 적극적인 협력 의지를 피력했다. 미국 조선업을 위한 제언으로는 '미국산(Made in USA)' 제품이 가진 대외 신뢰를 꼽으며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인센티브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韓 생산능력·기술·인력, 美에도 적용 가능"
마이클 비지아노 한화 북미 대관 담당 총괄 이사는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소재 한미경제연구소(KEI)의 전문가 대담에서 한국 조선업의 성공 비결을 미국에 적용하기 위한 방법을 묻는 말에 "한국 조선업이 가진 생산능력과 숙련된 인력, 첨단기술 등을 미국에 접목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는 "한화오션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연간 40척이나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한화가 필리조선소에 투자한 이유도 바로 그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조선업에 대해 미 정부와 의회의 관심이 커지고 미 백악관에 조선(담당) 사무국을 설치한 것도 긍정적 요소로 꼽았다.
그는 또 "다행히 미국에서는 제조업 부활과 리쇼어링(Reshoring·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이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며 "한화그룹은 미국 정부, 다른 기업들과 협력해 기술과 인력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마이클 비지아노 한화그룹 북미 대관 담당 총괄 이사(가운데)가 26일(현지시간) 미국 싱크탱크 한미경제연구소(KEI)가 '미국 조선업 부활과 한국의 전략적 역할'이란 주제로 개최한 전문가 대담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앤디 홍 KEI 프로그램 담당(왼쪽), 콜린 그라보 케이토 연구소 무역정책연구 부소장(오른쪽)도 참석했다. 사진출처=KEI 유튜브 캡쳐 |
美조선업 차별점은 '메이드 인 USA'
미국 조선업만의 차별화 전략으로는 '미국산'이라는 가치를 꼽았다. 비지아노 이사는 "미국은 무조건 최저가 전략을 따라갈 수는 없다"며 "최고의 기술력과 경쟁력 있는 가격, 미국산이란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를 위한 정책적 지원과 업계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문도 내놨다.
특히 한국·일본·중국과 다르게 조선산업 관련 클러스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미국의 현주소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의지와 인센티브가 미국 조선업의 명운을 가를 핵심일 것으로 봤다. 그는 "과거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필리조선소 인력이 80명까지 줄었을 때 미 정부는 전략자산을 지켜야 한다는 판단하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면서 "조선업 전체에 이런 접근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상업 조선업의 쇠퇴는 미 해군 조선소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미국은 군사·안보 차원에서 미 해군 국방력 강화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 2024년 기점으로 중국은 234척의 수상 전투함을 보유해 미국(219척)을 앞섰다. 여전히 질적으론 미국이 우위지만, 미국은 글로벌 패권국이란 점에서 동아시아 맹주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보다 풍부한 전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 출범 초기부터 미 해군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미국 조선산업의 재건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지난 4일 의회 연설에서도 미 조선산업 재건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부족한 건조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 등을 전략적 협력대상으로 꼽으면서 관련 업계 기대감이 커졌다.
마이클 비지아노 한화그룹 북미 대관 담당 총괄 이사(가운데)가 26일(현지시간) 미국 싱크탱크 한미경제연구소(KEI)가 '미국 조선업 부활과 한국의 전략적 역할'이란 주제로 개최한 전문가 대담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출처=KEI 유튜브 캡쳐 |
한화그룹 "해군 조선 분야 진출 계획 있다"
비지아노 이사는 한국 등 외국 조선업체를 미국에 유치해 군·민 양용 조선사로 활용하는 방안의 현실적 어려움을 묻는 말에 "방위산업 관련 기술 이전은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며 "한화가 필리조선소를 인수할 때는 기술이전이 주로 미국으로 향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심사가 순조로웠다"고 설명했다.
한화그룹이 해군 조선 분야에도 진출할 계획이 있다고도 밝혔다. 그는 "미 정부의 규정을 준수하고 필요한 절차를 밟을 것"이라면서 "과거에도 외국 조선업체가 미국에 진출해 해군 함정을 건조한 사례가 있다"고 했다.
미 조선업을 보호하는 '존스법' 논란과 관련해선 "이 법이 없다면 미국에서 조선업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며 "폐지는 답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존스법은 105년 전인 1920년 제정된 상선법 27조로 미국 내 두 지점 간 화물 운송은 미국에서 등록되고, 미국인이 75% 이상 소유하고, 미국인이 승선하고, 미국에서 건조된 선박으로만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일각에선 미국 조선업 쇠락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비지아노 이사는 "조선업체들이 투자하고 혁신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며 "미국이 에너지 수출국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미국산 선박으로 에너지를 수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근 미 의회에서 발의된 '미 조선업 강화법(SHIPS for America Act)'의 입법 노력과 이를 통한 정부 지원이 '창의적 해법'이 될 것이란 발언도 내놨다.
앞서 한화그룹은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을 통해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북미 조선과 방산 시장의 진출 거점을 확보했다. 현재는 한화시스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통해 미국 군함 제조·납품사인 호주 오스탈(Austal) 인수를 재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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