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전쟁 선전포고, 곳곳서 "허 찔렸다"
차값 상승 우려에도 '미국 재건'에 올인
"트럼프식 해법 제시해야 활로 뚫릴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수입 자동차에 대한 관세 카드를 꺼내든 것은 집권 1기 당시였던 2019년 이후 6년 만이다. 당시엔 자동차 수입 확대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춰 조사를 진행하다 25% 관세 부과 등의 대책을 보고받고도 접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달 12일부터 관세가 부과되기 시작한 철강·알루미늄과 파생제품에 이어 품목별 관세로는 세 번째 관세 부과 대상을 자동차로 낙점했다. 오는 4월2일 전 세계 각국을 상대로 한 상호관세 발표를 두고 치열한 물밑 협상전에 치중해온 각국 정부에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허를 찔렸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전격적인 발표였다.
이번 조치로 미국 내부에서도 자동차 판매가격이 최소 3000달러(440만원) 이상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물론 트럼프 행정부에 우호적인 성향의 폭스비즈니스도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콕스 오토모티브를 인용해 미국산 신차 가격은 3000달러, 캐나다·멕시코산 신차 가격은 6000달러 오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오래 전부터 구축된 공급망을 따라 금속 원자재부터 엔진에 이르기까지 북미 전역 국경을 수차례 넘나드는 자동차 부품에 경유지마다 세금이 부과될 경우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급망 자체가 붕괴되면서 자동차 생산이 급감할 수 있다는 비관론까지 제기된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당시에도 범용부품인 와이어링 하네스를 생산하던 중국 공장이 멈추면서 현대차 생산라인이 전면 가동중단됐던 적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뉴스1 |
미국에서 조립되는 '미국산' 자동차라고 해도 수입 부품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상 '순수한 미국산 자동차'는 애초에 존재하기 힘든 데다 관세당국이 미국산 부품과 외국산을 하나하나 어떻게 구분할지도 모호하다. 제너럴모터스(GM)의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쉐보레 블레이저'의 경우 핵심 부품인 엔진과 변속기를 미국에서 생산해 멕시코 공장으로 보내면 완제품으로 조립한 뒤 미국으로 다시 수입해오는 방식으로 판매된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6년 만에 다시 자동차 관세 부과 카드를 꺼내든 것은 '미국 재건'이라는 2기 행정부의 집권 목표를 달성할 수단으로 '관세'에 대한 굳건한 믿음 때문이라는 게 외교통상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집권 당시 '거래의 달인' 같은 행보를 가감 없이 보였다면 재집권 이후 행보에서는 1기 때 완성하지 못한 이른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과업을 마무리하려는 정치적 결의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는 얘기가 들린다.
외교통상가 한 인사는 "글로벌 리더십을 포기해서라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고립주의와 일방주의, 예외주의를 선택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라며 "동맹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관세 부과는 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에 언급한 '관세 수익'은 이를 드러내는 주목할 만한 힌트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관세 부과로 연간 1000억달러(약 147조원)의 세수 증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재 2.5% 수준인 미국 수입자동차 평균 관세가 10배 높아지는 데 따른 효과다.
이날 예고한 의약품과 목재에 대한 관세와 오는 4월2일 발표를 앞둔 상호관세까지 각종 관세 조치에 따른 조세 수익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2년 안에 6000억달러(약 881조원)에서 1조달러(약 1469조원)가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수십조 또는 수백조원 단위의 관세 수익이나 이에 버금가는 정책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점을 감추지 않은 것이다. 상대국으로선 맞대응 카드나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무리해 보이는 관세전쟁을 비롯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대로는 더 이상 '나홀로 최대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당면 난제를 고해성사하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재계 한 인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미국의 취약점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신속하게 보완할 수 있느냐"라며 "정부 당국이든 기업이든 트럼프 대통령의 이 문제에 해법을 제시하는 쪽에 일단 활로가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심재현 특파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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