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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영남 산불, 부산도 위협… 이재민 2만8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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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끄던 헬기 추락해 조종사 숨져… 주민 등 총 26명 사망
이재민들, 군민회관·체육관 등서 쪽잠… 도움의 손길 필요
조선일보

마을도 마음도 다 타버려… - 26일 오전 산불로 인해 대피한 경북 영양군 주민들이 군민회관 대피소에 모여 있다. 단출한 짐만 챙겨 나온 모습이다. 21일부터 전국 곳곳에서 시작한 산불이 주변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지금까지 2만8000여 명이 화마(火魔)를 피해 집을 나왔다. 산림 당국이 헬기와 소방대원을 총동원해 진화 작업을 하고 있지만, 건조한 날씨에 강풍이 계속돼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이후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산불이 건조한 바람을 타고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지난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안동과 청송, 영양을 거쳐 25일 동해안 영덕까지 번졌다. 사흘 만에 동쪽으로 70㎞ 거리까지 번진 것이다. 지난 21일 경남 산청에서 발생한 산불은 26일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를 넘어 천왕봉을 향했다. 울산 울주에서 시작된 산불은 이날 오후 남하해 부산을 위협했다.

산림 당국 등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불탄 면적은 약 6만5000ha로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6만5000ha는 축구장 9만1000개 넓이와 맞먹는다. 그동안 가장 규모가 컸던 산불은 2000년 강원 고성·강릉·삼척 등에서 발생한 산불(2만3794ha)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불 지역이 워낙 넓어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했다.

의성 일대에선 25~26일 이틀 새 주민 21명이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됐다. 영덕 8명, 영양 6명, 청송 3명, 안동 4명 등이다. 청송군에서는 86세 할머니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집에서 숨졌다. 영덕군에서는 요양원 노인 4명과 직원 2명을 태운 차량이 불길에 폭발해 노인 3명이 숨졌다. 영양군에서는 일가족 3명이 급하게 대피하다가 차량이 전복해 목숨을 잃었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사망자 대부분이 60대 이상 고령으로, 재난 문자를 제때 확인하지 못했거나 뒤늦게 대피하다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산불을 끄던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1명도 숨졌다. 이날 낮 12시 51분쯤 경북 의성군 신평면 산불 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하던 헬기 1대가 추락해 조종사 박모(73)씨가 숨졌다. 목격자들은 “헬기가 물을 뿌리다 전깃줄에 걸린 것 같다”고 전했다.

전국 산불 현장에 투입된 헬기는 118대로, 헬기가 추락한 건 처음이다.

지난 22일 경남 산청에서 산불에 고립돼 숨진 진화 대원 4명을 포함하면 이번 산불로 숨진 사람은 총 26명으로 늘어났다.

소방 당국은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의성 산불은 동해안 태우고, 산청 산불은 지리산 뚫었다

이재민도 2만8000명을 넘어섰다. 이 중 청송 지역의 이재민은 1만여 명이다. 청송 인구(2만3000여 명)의 절반이 마을회관이나 체육관 등으로 대피한 것이다.

산불의 영향으로 경북 일부 지역은 물 공급이 끊겼다. 경남 산청 등 일부 지역에는 전기가 끊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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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읍내 위협하는 불길 -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풍을 타고 계속해 확산하고 있다. 청송읍 뒷산이 뻘겋게 타오르는 모습. /연합뉴스


산불은 문화유산도 위협하고 있다. 전날 바람이 약해지며 가까스로 불길을 피한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은 이날 다시 산불이 번지며 비상이 걸렸다. 이날 밤 2㎞ 거리까지 불길이 확산했다. 산림 당국은 헬기 2대를 투입해 방어선을 구축했다. 소방관들은 소화전 30개와 소방차 19대를 동원해 초가 지붕 등에 물을 뿌리고 있다. 안동시는 하회마을 주민들에게 인근 마을로 대피하라고 재난 문자를 보냈다. 청송 대전사는 불길을 막기 위해 사찰 주변의 나무를 베어냈다.

법무부는 안동 일대에 산불이 번지자 안동교도소 재소자 800여 명을 다른 교도소로 대피시켰다.

지난 21일 경남 산청에서 시작된 산불은 26일 오후 강한 바람을 타고 지리산 국립공원의 경계를 넘었다. 산림 당국에 따르면, 산불은 이날 오후 12시 30분쯤 산청군 시천면 구곡산 기슭을 지나 지리산 국립공원의 경계를 넘어섰다고 한다. 지리산 국립공원 관계자는 “산불을 막기 위해 낙엽을 치우며 방어선을 구축했지만 화염이 너무 거세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불길의 방향은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을 향하고 있다. 천왕봉(1915m)까지 거리는 8㎞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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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양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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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양진경


경남도는 이날 오후 지리산 자락의 중산리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덕산사에 있는 국보 석조비로자나불도 근처 한의학박물관으로 옮겼다. 지리산 국립공원은 우리나라 1호 국립공원이다. 196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483㎢ 크기로 국립공원 중 가장 넓다.

경남도 관계자는 “날이 건조한 데다 강한 바람이 지리산 쪽으로 불고 있어 어려운 상황”이라며 “헬기로 불길의 확산 속도를 늦추는 산불 지연제를 뿌리며 버티고 있다”고 했다. 산불 지연제는 끈적끈적한 화학물질로 뿌리면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지난 21일 경남 산청에서 발생한 산불은 일주일째 주불을 잡지 못하고 있다. 산림 당국 관계자는 “경사가 가파른 고지대라 불을 끄기 더 어렵다”며 “낙엽층 두께만 30~40㎝라 다 끈 것 같아도 바람이 불면 또 불이 퍼져 안심할 수 없다”고 했다. 전날 경남 진주시 수곡면으로 확산됐던 불길은 진압을 마무리한 상태다.

국방부는 “27일부터 주한 미군 헬기 4대를 산청 지역에 투입한다”고 밝혔다. 이번 산불 현장에 미군 헬기가 투입되는 건 처음이다.

지난 22일 울산 울주군 온양읍에서 발생한 산불도 꺼졌다 살아났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날은 남쪽의 경남 양산으로 번졌다. 양산시는 노인 요양병원과 사찰 등에 대피 명령을 내렸다. 산불은 이날 부산 기장군 근처까지 확산했다. 국가유산청은 기장군 장안사에 있는 보물 석조석가여래삼불좌상 등을 부산으로 옮겼다. 대웅전에는 방염포를 씌웠다.

산불로 고속도로와 철도도 끊겼다. 한국도로공사는 서산영덕고속도로 동상주IC∼영덕IC 구간(105.5㎞)과 중앙고속도로 의성IC∼예천IC 구간(51㎞)의 차량 운행을 통제하고 있다. 코레일은 이날 오전 중앙선 영주~영천 구간과 동해선 동해~포항 구간의 열차 운행을 중단하기도 했다.

한편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 의성과 경남 산청 등에는 기업과 종교단체 등의 성금이 줄을 잇고 있다. 경남 산청군에선 자원봉사자들이 이재민과 진화 작업에 지친 진화 대원들을 위해 매일 밥을 짓고 있다. 구호 단체들도 이불과 옷, 간식 등을 지원하고 있다.

[안동=노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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