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포항공장 입구. 연합뉴스 |
미국 트럼프 정부가 촉발한 경제 환경 변화로 조 단위 해외 투자에 나선 국내 주요 그룹들의 자금 조달 방법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존 주주들에게 손 벌리는 한화와 주주 도움 없이 자구책을 마련하겠다는 현대차 얘기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산하 현대제철은 전날 장 마감 후 진행한 기업 설명회에서 “미국 현지 제철소 투자를 목적으로 시장이 우려하는 유상증자를 검토한바 없다”고 밝혔다. 현대제철은 앞서 24일(현지시각)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백악관에서 발표한 210억달러(30조7천억원) 규모 대미 투자 계획에 따라, 내년부터 2029년까지 58억달러(8조5천억원)를 투자해 미 루이지애나주에 자동차 강판용 제철소를 짓기로 했다.
회사 쪽 설명을 종합하면, 이 투자금의 절반은 현대제철을 포함한 현대차그룹과 외부 투자자들이 공동 출자해 마련할 계획이다. 나머지 절반은 금융회사 등 외부 기관에서 빌리기로 했다. 그룹 계열사들과 외부 투자자가 갹출한 돈과 차입금을 통해 유상증자 없이 8조원 넘는 투자금을 모두 조달하겠다는 얘기다.
이재광 엔에이치(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제철이 현대차그룹 출자분의 최소 30%를 참여할 경우 최소 8억7천만달러(1조3천억원)를 직접 투자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현대제철 쪽은 “증자를 검토하지 않은 건, 공동 투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회사가 벌어들이는 현금 흐름 범위 내에서 투자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상증자를 향한 시장의 반발을 고려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의 방위비 증액에 따라 해외공장 건설 등에 쓸 투자비 3조6천억원 전액을 주주 대상 증자를 통해 마련하겠다는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한화에어로 역시 유상증자 없이 향후 거둘 이익만으로도 현재 계획한 중·단기 투자금을 충당할 수 있다는 주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한화 쪽은 ‘수주 경쟁력’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조처라고 설명한다. 방산업은 무기를 구매하는 발주처가 미리 지급한 대규모 선수금이 부채로 잡히는 까닭에, 회사의 부채비율(자기자본 대비 부채총액 비율)이 올라가 현지 기업과의 수주 경쟁에서 재무 악화를 이유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한화에어로의 부채비율(이하 연결재무제표 기준)은 지난해 말 현재 281.3%로, 현대제철(79.7%)에 견줘 훨씬 높다.
그러나 시장에선 여전히 의구심을 품은 시선이 적지 않다. 한화에어로가 유상증자 직전인 지난 2월10일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소유한 비상장사인 한화에너지 등이 가진 한화오션 지분을 1조3천억원에 사들였던 까닭이다. 상장사 자금으로 총수 일가의 현금화를 돕고 뒤늦게 주주들에게 손을 벌리는 게 아니냐는 거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현대차그룹의 경우 국내 경제력 집중과는 무관한 해외 투자를 위해 계열사가 공동 출자하는 건 각사 주주들의 동의만 받으면 문제 될 게 없다”면서도 “한화에어로의 경우 주주들에게 돈을 내라면서도 1∼2년 내에 이를 어디에 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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