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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어른 불장난

조선일보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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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일러스트=이철원


부모님 뵈러 시골에 갔다가 자욱한 연기를 보곤 한다. 깻대나 콩대 같은 영농 부산물을 태운 연기다. 폐비닐처럼 유독가스를 내뿜는 것도 종종 태운다. 이웃집 마당에 재가 내려앉기 일쑤고 불씨가 뒷산 쪽으로도 날아간다. 부모님께 “왜 신고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농촌은 서로 아는 사이라 못 본 척한다”고 했다. 불법이지만 단속은 쉽지 않다. 어느 산불 감시 담당자는 “하루 100㎞ 이상 순찰을 돌지만 사람들이 순찰 시간을 알고 있는 데다 단속을 피해 숨바꼭질하듯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불을 지른다”고 하소연했다.

▶농촌에서 벌어지는 각종 소각 행위는 산불의 주된 원인이다. 올 들어 지난 24일까지 발생한 전국 산불 가운데 111건의 원인이 밝혀졌다. 그중 산 주변 마을이나 밭에서 쓰레기와 콩대 등을 태우다가 발생한 것이 42건으로 가장 많았다. 산에 들어가 불을 낸 횟수(22건)보다도 많았다니 농촌에서 어른들이 장난하듯 불만 안 질러도 산불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정월 대보름 쥐불놀이나 달집태우기처럼 불로 액을 태워 없앤다고 믿는 무속도 화재를 부르는 악습일 뿐이다. 2009년 정월 대보름 맞이 화왕산 억새 태우기 행사 때 불이 관람객을 덮쳐 90명 가까이 죽거나 다친 참사가 빚어졌다. 한식(寒食) 등 봄철에 산에 성묘 가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산에서 요리를 하거나 잡초를 태우고 향을 피우거나 담배꽁초를 버리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에는 “죽은 조상 위하려다 산 사람이 죽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도 산불로 아까운 생명이 희생되고 소중한 문화재와 땀 흘려 일군 재산이 잿더미가 됐다. 산불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반복되지만 처벌만으로는 부족하고 개인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농촌에서 쓰레기 태우는 것부터 중단해야 한다. 이웃이 그러면 눈감아 주지 말고 신고해야 한다. 논·밭두렁 불태우기도 현대식 해충 구제가 불가능했던 시절에나 하던 구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 산불 담화를 발표하며 “우리가 국토를 관리해온 방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자”고 했다. 헬기 128대와 인력 4600여 명을 동원했고 주한 미군 도움까지 받았지만 대규모로 번지는 산불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한 대행은 “논두렁과 밭두렁을 태우지 말고 쓰레기 소각을 하지 말고 담배꽁초를 버리지 말고 산에 갈 때 라이터나 버너도 가져가지 말자”고 당부했다. 지키려고 마음만 먹으면 하나도 어렵지 않은 것들을 지키지 않아 해마다 봄이면 전국 산이 불탄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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