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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영수 목사. 필자 제공 |
주변을 돌아보면 일상에도 천근 같은 무게감이 있고, 역사 한복판에서도 새털같이 가벼운 처신을 본다. 인간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데 거창한 개념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고 김영수(1946-1984) 목사를 기록하면서 ‘오늘’과 ‘역사’를 염두에 두고 묻는 이유다. 역사를 살려는 장한 고집이 없다면, 누구든 별난 고민 없이 세상과 밀착하며 살 것이다.
김영수는 일상을 참으로 무겁게, 그리고 역사를 의식하면서 살았다. 그의 생애는 지난해 40주기 추모식을 통해 비로소 세상에 다시 이름을 드러냈다. 영상에서 본 그는 평범한 목사였다. 평소 예수의 제자로 시대를 아파했고, 사랑하는 이와 결혼해 두 딸을 두었으며, 인천 강화 창후교회와 경기 평택 서탄교회에서 신실한 목회자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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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김영수(뒷줄 맨 오른쪽) 전도사가 서울 동대문 재건중학교 야학 학생들과 소풍 중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필자 제공 |
참석자들은 40년 전 김영수를 오늘로 불러냈다. 그가 결혼 피로연에서 부른 상록수 녹음테이프는 그 시절 남다르지 않은 추억의 한 장면이었다. 추모사를 하던 이들은 저마다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그를 기억하고, 소환하였다. 40년 후에야 복원된 그의 죽음은 망각의 긴 어둠에서 마침내 부활한 셈이다. 이를 사회적 복기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 속 그날, 1980년 5월 광주를 현장에서 목격한 형제교회 청년 김의기(1959-1980, 서강대 학생)는 국민의 눈을 가리는 거짓 뉴스의 홍수 속에서 광주의 진실을 몸으로 증언하다가 형사들에게 쫓겨 5월30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6층에서 추락하였다. 마침 6월2일, 당시 김영수 전도사는 얼마 전까지 교감을 지냈던 동대문감리교회 부설 재건중학교 교무실을 방문하였다.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공부했던 야학이다.
같은 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김의기 열사의 빈소가 마련되어, 장례식을 앞두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감리교 청년들은 조문객들에게 김의기가 목숨을 걸고 뿌린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배포하였다. 마침 야학 교사 박효원 전도사가 받아온 유인물을 교무실에서 돌려 보았는데, 의분을 느낀 김영수는 인천 강화도 홍의교회에서 열린 청년 집회에서 낭독하고, 배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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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하는 고 김영수 목사. 필자 제공 |
광주의 진실을 알리려는 목회자다운 양심과 태도였다. 이 일로 체포되어 강화경찰서에 수감되었고, 그에게 ‘국가원수 모독과 비방죄’가 덧붙여졌다. 수도군단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났지만, 불의에 맞선 항거는 계속 이어졌다. 광주의 5월이 역사로 굳어가던 즈음, 김영수에게 5월은 여전한 오늘이었다.
그는 구속 전에도 일상에서 불한당 세력과 맞섰다. 예비군 훈련소집을 거부하는 생활투쟁을 통해 엄연히 군사정권에 맞선 것이다. 두차례 소집통지서를 받고 양심선언문과 함께 반송하였다. “2533부대장 귀하. 금번 귀하의 훈련소집 통지서를 받고 본인의 양심의 소리와 함께 통지서를 반납합니다. (중략) 오늘의 군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비상계엄을 확대하여 국민을 억압하고 구속하며 심지어 선량한 시민을 향해 총과 칼을 서슴없이 휘두르고 있습니다. (후략)”(1980년 5월31일).
예비군 훈련을 받기 위한 요구 조건은 ‘비상계엄 철폐’ ‘민주인사 석방’ ‘광주사태 책임’ ‘군 통수권자 사퇴’였다. 그는 1984년 졸지에 얻은 백혈병으로 38살로 세상과 작별하기에 이른다. 석방 후에도 하루도 맘 편할 날 없이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책과 무력감으로 몸부림친 것이 원인이었다. 오늘의 불명예를 거절하며, 역사의 길을 택한 결과였다.
계엄과 탄핵정국으로 어수선한 요즘, 김영수의 오늘과 역사가 더 아프게 다가온다. 고마운 일은 그가 하늘나라로 간 지 41년 만에 국립5·18민주묘지에 묻혔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유인물을 건네준 김의기 열사와 나란히, 또 1980년 5월 보안사의 폭력으로 희생된 임기윤(1922-1980, 부산제일교회) 목사와 어울려 같은 동산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역사의 순리는 이렇게 만나고, 회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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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 41년 만에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된 고 김영수 목사. 필자 제공 |
믿음과 행동으로 의롭고 당당한 목회자의 삶을 보여준 김영수는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의 모범이다. 시대의 거친 상처를 딛고 그리운 남편과 아버지를 사랑과 존경으로 명예를 지켜온 가족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송병구/색동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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